◆ 다주택자 규제의 역설 ◆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부의 '세금 압박 정책'이 부동산 시장 매물 부족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1년 새 서울과 경기에서 다주택자들의 아파트 매도량이 2만가구 이상 줄어든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다주택자에 대한 전방위 세금 압박에 나서면서 유예기간 동안 다주택자 매물이 대거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인 셈이다. 4일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주택 매매거래량 현황'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20년 7월~2021년 6월) 다주택자의 서울 아파트 매도 건수는 1만8806건으로 직전 1년(2019년 7월~2020년 6월) 2만9833건 대비 1만1027건(37%) 감소했다. 경기에서도 같은 기간 다주택자 매도 건수가 8만176건에서 7만254건으로 9922건(12.4%) 줄었다. 2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전체 매매 현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전체 서울 아파트의 연평균 거래량은 8만3000건 수준이고, 이 중 다주택자들이 내놓는 매도 물량은 30%를 차지한다. 한 해 전체 거래량의 약 13%(1만1027건)에 달하는 거래 물량이 다주택자들의 매도심리 위축으로 줄어버린 것이다.
최근 5년간 서울 신축 아파트 연평균 분양물량(3만3628가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7·10대책 발표 전(2017년 5월~2020년 6월) 38개월 동안 다주택자들의 월평균 서울 아파트 매도량은 2321건이었다. 하지만 최근 1년간 월평균 매도량은 1567건으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취득과 보유, 양도 등 주택과 관련한 모든 세금을 올리며 다주택자들을 압박했다. 세금 중과는 올해 6월 1일부터 시행됐다. 유예기간을 줄 테니 매물을 시장에 토해내라는 신호였다. 지난해 7월 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 기획재정위에 출석해 "다주택자들에 대한 중과세로 매물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주택이 228만가구 정도 되는데 양도세를 한시적이라도 완화해주면 유통 매물이 시장에 풀리고 단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주택자 매매현황서 '매도 대신 증여' 통계 첫 확인
서울 증여 2만4천건 달할때
다주택자 매도 고작 1만9천건
80% 양도세 물고 집 파느니
50% 증여세 내고 가족에게
"징벌적 과세로 매물만 잠겨"
서울 다주택자 매도 1만건 '뚝'
한해 거래량 13%가 없어진 셈
# 대학교수 A씨는 올해 상반기 경기도 소재 아파트 1채를 자녀에게 증여했다. 모친 명의의 부산 수영구 소재 아파트를 물려받게 되면 3주택자가 돼 올해 보유세만 6340만원에 달한다는 세무 상담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주택자가 될 경우라도 보유세 부담은 2220만원 선이었다. 정부가 아파트 공시가격까지 크게 끌어올린 데다 다주택자 보유세 강화 방침을 꺼내들자 부담이 급증한 것이다. 증여세가 1300만원에 달했지만 연간 2200만원의 보유세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얘기에 증여로 출구전략을 세웠다. 지난 1년간 정부는 세금 부과 유예라는 당근책을 던졌지만 A씨는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매도'는 선택지에 집어넣지 않았다.
4일 매일경제가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주택 매매 거래량 현황'과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증여 통계를 결합해 분석한 결과 최근 1년 새 서울 아파트 전체 증여 건수가 다주택자 매도 건수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시장 전문가들이 "정부의 세금 압박에 시장에 매물을 내놓기보다 증여로 우회 전략을 세우는 다주택자가 많다"고 분석했는데, 실제 통계로 입증된 셈이다.
다주택자 세금 중과 방안을 발표한 이후 최근 1년(2020년 7월~2021년 6월) 다주택자들의 서울 아파트 매도량은 전년 동기 대비 1만1027건 감소했지만 아파트 증여 건수는 8096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다주택자들 매도량이 9922건 감소했던 경기 지역도 증여 건수가 1만1597건 늘었다. 주택 증여가 다주택자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다주택자 매도 감소량 대부분이 증여로 이동한 셈이다.
증여로 세금 압박 출구전략을 세우는 다주택자가 많아지며 서울에서는 아파트 전체 증여 건수가 매도 건수를 추월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최근 1년간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2만3749건으로 다주택자들의 매도 건수(1만8806건)보다 4943건 많았다. 직전 1년(2019년 7월~2020년 6월)까지만 해도 다주택자 매도 건수(2만9833건)는 증여 건수(1만5654건)보다 1만4000여 건이나 많았다. 2018년과 2019년 연간 통계를 기준으로도 다주택자 매도 규모가 전체 증여보다 1만건 이상 많다.
실제로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증여 건수 증가세가 더욱 가파른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5월부터 2020년 6월까지 38개월간 월평균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1092건이었지만 최근 1년간은 1979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경기 역시 같은 기간 1574건에서 2735건으로 증가해 최근 1년 새 월평균 증여 건수가 1000건 이상 늘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증여를 선택하는 다주택자가 더 많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다주택자 중과가 시행되면서 오히려 증여하는 게 유리하다고 여겨 세 부담을 더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이 시장에 매물을 내놓을 유인이 더 줄어드는 셈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서울 아파트 단지 일부에서는 아파트를 팔 때보다 증여할 때 세금이 더 적은 경우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94㎡를 2016년 1월 당시 시세인 16억2000만원에 산 3주택자는 최근 실거래가 35억9000만원에 집을 팔 경우 시세차익 19억7000만원에 대한 양도세(15억5124만원)보다 증여세(성년 자녀로 가정)가 2억원가량 더 적다.
법률사무소 자산의 김성호 대표변호사는 "조정지역에 주택을 소유한 다주택자가 최대 80%의 양도세를 내고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넘겨주기보다는 50%의 증여세를 내고 가족에게 넘기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며 "양도세를 한시적으로라도 완화해주지 않는 한 정부가 원하는 다주택자의 매물 출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승철 유안타증권 수석부동산컨설턴트는 "최근 1년 새 강남을 중심으로 한 서울 다주택자들 사이에서는 매도보다는 증여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실제로 시장도 그렇게 움직였다"며 "양도세와 종부세 등 부동산 세금은 정권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다주택자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다주택자들이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면서 전체 주택 거래 시장에서 차지하는 증여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원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체 거래량은 7만4205건이었으며 이 중 1만355건(13.95%)이 증여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량 대비 증여 비율은 2017년 4.48%, 2018년 9.56%, 2019년 9.66%를 기록하다 지난해 14.18%로 급등했다.
송 의원은 "정부가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풀도록 하겠다면서 추진한 징벌적 과세 정책은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매물 잠김 현상만 가속화시키며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국민을 투기 세력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집이 필요한 곳에 집을 짓는 수요자 중심의 공급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