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포구 연남동 투자를 물색하던 40대 유 모씨는 현지 중개업자를 통해 한 단독주택을 소개받았다. 홍대입구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데다 주변 상권이 살아나고 있어 게스트하우스 용도로 적당해 보였다.
60대 중개업자는 "원래 25억원짜리 물건인데 특별히 23억원에 매수할 수 있도록 주선할 테니 빨리 가계약금부터 쏘는 게 좋겠다"고 부추겼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홍대 상권이 정상화되면 시세차익이 기대된다고 판단한 유씨는 경쟁이 심하다는 중개업자 말에 끌려 매물을 본 지 3시간 만에 매도인 계좌번호로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이 과정에서 잔금 일정 등도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씨는 이후 우연히 검색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동일 매물이 18억원에 등록된 것을 발견해 망연자실했다. 중개업자 말만 듣고 성급하게 계약한 게 화근이었다. 매도인 측은 한 달 전 본인 허락도 없이 강남권 부동산이 올린 매물이라 효력이 없다고 우겼다.
유씨는 변호사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고 가계약 파기를 추진하고 나섰다. 변호사와 상담하면서 본인이 부동산업자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인정작업'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인정작업이란 부동산중개업자가 임의로 또는 매도자와 협의하에 팔고자 하는 가격보다 비싸게 팔고 그 차액을 갖거나 매도자와 나누는 방식의 불법 계약을 뜻한다. '순가계약' 혹은 '업브리핑'이라는 말로도 통한다.
매도자가 긴박한 상황일 경우 중개업자가 "얼마 이상을 받아줄 테니 그 차액을 나에게 달라"는 식의 제안도 하는데 통상 매도자는 속히 거래될 것이란 기대감에 호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례도 매물 등록가격보다 5억원이나 높은 가격에 계약됐다면 차액 상당 부분을 중개업자가 챙겼을 공산이 크다.
최근 각종 규제로 매물이 귀해지고 매수자들이 몰려들면서 거래 가뭄이 지속되자 매도자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인정작업이 형성되기 좋은 여건인 셈이다. 특히 빌라나 토지 등 거래 자체가 흔하지 않아 표준 시세가 형성되기 어려운 경우 매도자와 매수자 간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인정작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
[이한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