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업 옥죄는 중대재해법 (下) ◆
건설사들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에 앞서 현장 사고 발생을 줄이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특히 회사마다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했다는 기록을 남겨놔야 불의의 사고 시 면책을 주장할 수 있어 각양각색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별 접근법이 천차만별인 데다 대형업체와 중견업체 간 대응 역량에 격차가 커 안전문제 역시 양극화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건설이 지난달 23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장비협착방지시스템'을 모든 건설현장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장비협착방지시스템은 건설현장의 중장비 등에 작업자가 끼는 사고를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방식은 초음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알람이 자주 발생해 정작 현장에서 활용을 기피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번에 도입한 AI 영상인식 기반 시스템은 AI가 사물과 사람을 구분해 중장비에 사람이 접근할 때만 알람이 울리도록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또 현대건설은 기중기 작업 시 버킷(자갈 등을 담아 운반하는 바구니 모양의 기구) 때문에 전방 시야가 가려져 발생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카메라로 버킷 너머의 전방화면을 제공함으로써 사각지대를 제거하는 기술 도입도 추진한다.
DL이앤씨 역시 건설현장에 AI, 증강현실(AR),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안전관리에 활용 중이다. 특히 AI형 폐쇄회로(CC)TV와 IoT 기술을 결합한 '컴퓨터 비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건설 중장비에 기계 움직임을 감지하는 '머신 컨트롤' 기술을 적용해 운전자에게 작업량과 작업구간 현황 등과 같은 정보를 정확히 안내한다.
작업중지권 도입도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관계자는 "작업중지권 전면 도입 이후 6개월 동안 국내외 총 84개 현장에서 총 2175건의 작업중지권이 활용됐다"고 말했다. 대우건설도 근로자가 작업중지를 요청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도입과 익명 제보가 가능한 안전 핫라인 채널 구축을 완료했다.
업계에선 일단 기업들이 안전에 관심을 높이는 현상은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회사별 각자도생식 노력이 통일되지 않은 데다 규격화도 되지 않아 편차가 크고 장기적인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목소리도 많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선진국처럼 정부가 직접 상세한 안전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 건설현장에서 이를 지키게 하고 어기면 처벌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는 막연히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라'고만 지시하지, 현장 실정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생각도 없는 것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먼저 정부가 적절한 기준을 제시해줘야 건설사들이 현장 실정에 맞게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 수 있는데 정부가 기준 제시를 안 해주다 보니 건설사들이 먼저 나서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보는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김동은 기자 / 권한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