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라가 밀집돼 있는 서울 관악구 한 주거지역 전경(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아파트값 상승을 버티다 못한 실수요자들의 주택 수요가 빌라로 옮겨붙고 있지만 '현금 청산' 공포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2·4 대책의 일환으로 저층주거지와 역세권, 준공업지를 개발하는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각 사업지에서 6월 29일 이후 등기가 이뤄진 주택은 신축 아파트 입주권을 받지 못하고 현금 청산 대상이 된다.
정부는 3년 한시로 사업을 추진한다지만 현재로서는 어디가 사업지가 될지 알 수 없다. 노후 빌라를 매수했다가 덜컥 정부 사업지로 결정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사업자에게 감정평가금액 정도를 받고 집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집값 상승과 전세난에 쫓겨 빌라를 매수하는 주택 실수요자들이 늘고 있지만 현금 청산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주거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노후 주거지 곳곳에서 '현금 청산'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소재 구축 빌라를 계약한 A씨는 잔금일을 앞두고 머리가 복잡하다. 빌라로 생애 첫 집을 구매했는데, 지난달 정부가 A씨의 빌라가 있는 지역을 도심복합사업 후보지로 선정·발표하면서 현금 청산 위기에 내몰려 있다. 잔금을 치르고 계약을 마무리하자니 향후 시세보다 못한 감정평가액 정도에 집을 처분해야 할 상황이고, 계약을 파기하면 계약금을 전부 날리게 된다.
경매를 통해 전셋집 소유권을 취득한 조 모씨도 앞이 아득하다. 2년 전 갭투자자였던 집주인이 갑작스레 잠적하면서 전세금 반환소송과 경매 절차를 밟아 지난 7월 초 살고 있던 전셋집을 낙찰받았다. 하지만 경매 과정 중이었던 지난 6월 말 조씨의 거주지가 도심복합사업 후보지로 발표되면서 현금 청산 대상자가 됐다.
경매 일시는 응찰자 의지대로 바꿀 수도 없다. 조씨는 "내 돈을 들여 법무사를 쓰고 2년 동안 소송해서 지켜낸 전세보증금이고, 내 집인데 이제는 나라에 뺏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7월 빌라를 매매한 유 모씨 역시 이웃 주민들이 동의서를 모아 공공주도개발 민간 공모에 신청했다는 소식 때문에 전전긍긍이다. 실거주 목적으로 인테리어비를 수천만 원 들였는데, 사업이 진행되면 그대로 현금 청산 대상자가 된다. 인테리어비 등 매몰비용은 현금 청산 보상액에 산정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현금 청산' 피해 호소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예측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4 대책을 발표하면서 역세권 189곳, 준공업지 33곳, 저층주거지 61곳 등 전국 283개 지역을 우선 사업 추진 검토구역으로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지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정책과 관련 법은 '6월 29일 이후 매수자=투기세력'이라는 공식에 틀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주요 노후 빌라 단지들이 아파트값 상승과 전셋값 상승을 버티다 못한 사람들의 선택지가 된다는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거래량은 3만7541건으로 아파트 거래량 3만669건을 웃돌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아파트 거래량이 빌라 거래량을
일각에서는 투기세력과는 무관한 1주택자(매수 전 무주택자)들을 구제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도심주택총괄과 관계자는 "별도 입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토부 의지대로만 할 수는 없다"며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