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업 옥죄는 중대재해법 (上) ◆
건설업계는 근로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 확보라는 중대재해법의 입법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표현이 너무 많은 데다 처벌 규정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불명확한 문구다. 대표적인 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4항과 10조2항에 언급된 '안전에 관한 인력·시설 등을 갖추기에 적정한 예산을 편성할 것'이란 문구다. 여기서 적정한 예산이 어느 수준을 뜻하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남발될 우려가 크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법령 문구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건설사가 자의적으로 법령을 해석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만일 사고가 발생하면 그때는 법원의 판단을 따라야 해 당분간 현장에서 혼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그 밖에도 중대재해법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조문이 수두룩하다"며 "법리에도 무리한 부분이 많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뭘 해도 결국 처벌을 받는 법이다 보니 특히 중소형 건설사들은 아예 안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운에 맡길 가능성도 크다"며 "그 피해는 결국 근로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혹한 '처벌 규정'에 대한 불만도 많다. 중대재해법은 보호대상인 노동자 등이 사망하는 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사업장의 사업주 또는 CEO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혹은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도록 되어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처벌의 상한선이 아닌 하한선을 규정하는 건 고의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에게나 적용되는데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CEO가 고의적으로 사망사고를 내는 경우는 없는데도 이 같은 처벌 조항을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의 배경은 산업 현장의 안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국회의원들이 이념만 앞세워 법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업체 경영자들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해외 현장에서 한국인 직원을 철수시킨다는 결정이 좋은 예다. 일단 처벌부터
중견업체인 D건설사 대표이사는 "아무리 안전 시스템을 강화해도 예기치 않은 사고는 발생하게 마련"이라며 "한국인 직원이 현장에 없으면 한국인 사고 발생 가능성은 '제로(0)'가 되니 회사 입장에선 해외 현장 철수 선택도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