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파구 주택가를 바라보는 시민 모습 [매경DB] |
신학기와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주택 매매와 임대 등을 계획하고 있던 실수요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지난 24일 농협은행이 가계대출 신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한 데 이어 다른 은행들도 총량 관리를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출을 염두에 두고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인 이들과 계약갱신을 앞두고 오른 전세보증금을 대출로 해결하려는 세입자들은 행여 대출을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국은행은 지난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기준금리 인상은 작년 5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첫 인상이다.
한은이 금리를 인상한 것은 1805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랜 초저금리로 시중에 돈이 넘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물가가 치솟는 등 부작용을 생각하면 인상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다만, 은행에서 잔금을 빌려야 하는 주택 매입자나 치솟은 전셋값을 대출로 메워야하는 세입자 같은 피해자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국내 최대 부동산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30대 A씨는 "대출 중단에 금리 인상까지 지금 집을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도 "전세금 인상만 잘 버텨낸다면 결국 청약이 서울에서 신축 아파트를 장만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생각한다"고 적었다.
최근 주택을 매입했다는 B씨(40대)는 "변동금리 연 2.8%, 고정금리 연 3.3% 중에서 고민 중이었는데, 거래 은행으로부터 '변동금리 연 3.2%'라는 문자를 받은 후 높아진 이자부담이 실감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는 "금리 0.25%포인트 올려도 대출이자는 감당할 수 있지만, 투자보다는 빚부터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최근 금융권의 대출 한도 축소 등 움직임에 금리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이자 부담으로 주택 거래가 줄고 집값 상승 폭이 둔화하는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몇 년간 이어진 주택시장 과열은 저금리에 따른 과잉 유동성에 기인하는 만큼 이번 금리 인상은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도 "여전히 금리가 낮은 수준이라 당장 집값이 하락하기보다 거래량과 상승률이 둔화하는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작년 5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로 내린 뒤 지난달까지 1년 2개월동안 전국 아파트 매맷값은 14.47%, 수도권 아파트 매맷값은 16.86% 급등했다. 8월 넷째 주(23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값은 0.40%로 최근 6주 연속 상승했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2009년 2월 2%였던 기준금리가 2011년 6월 3%까지 계단식으로 오르면서 대출 상환부담이 커지자 2009년말부터 매물이 급속도로 늘기 시작하고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집값이 떨어졌다"면서 "금리인상이 시작된 와중에 입주물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와 맞물리게 되면 집값은 크게 조정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인상에 주택 매수심리 위축
시중은행이 대출을 제한(중단)하고 한은이 금리 인상을 발표하자 관망세를 보였던 주택 매수세는 더욱 움츠러드는 모습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서울아파트 매매는 1월 5796건, 2월 3874건, 3월 3789건, 4월 3666건, 5월 4896건, 6월 3937건, 7월 4534건, 8월 1149건을 기록 중이다. 이달 월말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고 지난달 체결된 거래등록 신고 기한(30일)도 지나지 않아 매매 건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추이를 볼 때 이달 올해 들어 가장 적은 거래량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건수 추이도 1월 5838건에서 이달 1489건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이같은 실수요자들의 주택 매수 관망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이 금리 인상 이후 추가 인상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단기급등에 따른 부담감에 대출 규제 강화, 금리 인상까지 삼중고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시장에 풀린 유동자금을 걷어 들이고 가계부채의 연착륙 도모하는 과정에서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구입 수요자들의 자금조달이 과거보다 제한될 확률이 높다"며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 매입수요는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7월부터 시행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등 강화된 대출 규제와 더불어 대출 의존도가 높은 매수세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금리 인상으로 실수요자들의 매수세는 줄어들 수밖에 없어 전반적으로 거래량은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도 "2030은 부모 도움 받지 않는 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금리가 두번 정도 더 오르면 결국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시중은행 앞에 대출 광고가 붙어 있다. [매경DB] |
부동산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작성자는 "이번 금리 인상으로 주변에 무주택 영끌한(영혼까지 끌어모은) 전세 대출자, 무주택 소규모 자영업자, 무주택 소규모 사업자 몇몇은 패닉(공황)에 빠졌다"면서 "0.5%에서 0.75%로 올리면 최저점 대비 50% 이자 부담이 늘어난 것과 같다. 조만간 금리가 또 오르면 지금 내는 이자 대비 급속도로 부담액이 늘어난다"고 토로했다.
금리 인상에 전세 대출자들이 매매 대출자보다 단기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작성자는 "70∼80% 대출받은 전세대출자들이 더 걱정이다. 4억만 빌려도 이자가 5%면 1년 이자가 2000만원"이라며 "대출로 집을 산 사람은 고정금리 조건으로 40%만 대출되고 40년 만기로 이자를 납부하다 보면 결국 내 집이 된다. 전세대출은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주야장천 나간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는 가을 이사철을 앞둔 시점이어서 무주택자들, 취약 차주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제 가을 이사철인데 전세대출 수요가 집중되면서 전세시장 불안이 길어질까 걱정된다"고 적었다.
다만, 금리 인상 폭이 크지 않고 '2030세대'의 영끌 구매, 갭투자, 전세시장 불안 등 다른 요인도 많아 집값이 안정세로 돌아설지는 지금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수도권 등 규제지역에선 이미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고가주택 구매가 어렵지만 '2030세대'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는 중저가 주택에 대한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구매)가 유행하는 상황"이라며 "이번 금리 인상만으로는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누그러뜨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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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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