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사진)의 중징계 취소 소송에서 논의된 5대 쟁점을 분석해보면 금융사와 최고경영자(CEO)의 내부통제 기준 마련에 있어 '실효성' 개념이 승패를 가른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내용이 핵심적인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법 위반으로 보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금융회사 등을 제재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27일 판결에서 금감원이 제재 사유로 제시한 5가지 항목 중 4가지에 대해 무효로 선언하고 1가지에 대해서만 적법하다고 인정했다.
무효로 선언된 제재 사유는 △사모펀드 출시 과정에서 상품선정위원회 등 상품 선정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기준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지 않음 △사모펀드 판매 이후 위험관리 업무와 소비자보호 업무 관련 규정, 수행할 조직에 대한 업무범위 및 절차 등에 관한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음 △적합성보고서 관련 상품의 위험 정도와 무관하게 상품 권유 사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음 △사모펀드 관련 내부통제 업무에 대해 점검체계 마련 의무 위반 등이다.
금감원은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금융사 지배구조법과 이 법의 시행령을 들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24조 1항은 금융회사가 주주와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과 절차(내부통제 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기준의 '실효성'에 방점을 찍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사모펀드 출시와 관련해 내부통제 기준을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통제 기준에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할 5가지 핵심 조건이 빠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지배구조법이 규정한 내부통제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손 회장 측은 우리은행이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금감원이 결여됐다고 주장하는 필수적인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며 지배구조법에 근거해 징계를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현행 법률만을 갖고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마련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현행법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닌 '준수 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해 제재 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금감원이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처분 사유를 구성했기에 징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판부는 "감독당국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사후적으로 묻기 위해 내부통제 규범 마련 의무 규정을 이용하는 것은 법치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나머지 한 가지 이유인 상품 선정위원회 회의 결과 통지, 보고, 위원·선정 교체에 관한 기준, 절차,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원고 측의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해 상품선정위원회의 의결 결과는 상품 출시 부서의 의도에 따라 수차례 왜곡됐고, 왜곡이 없었더라면 정족수에 미달해 출시되지 못했을 상품이 출시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판부는 금감원이 징계 근거로 든 지배구조법과 하위 조항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혼선이 빚
어졌다며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선고 결과와 관련해 손 회장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 관계자는 "이 사건은 파급력이 크면서 선례가 없어 금융 관계자들이 주시하고 있었다"며 "건설적인 금융업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원섭 기자 / 홍혜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