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국내 시중은행 신용등급을 잇달아 올린 배경이 은행들의 기초체력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강도 높은 지원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놓고 신용등급이 올라간 것은 긍정적이지만 '관치금융' 덕에 은행 신용도가 올라갔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NH농협은행의 장기 신용등급을 종전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지난달 30일에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신용등급을 각각 'A-'에서 'A'로 올렸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신용등급을 각각 A로 유지했지만 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다.
피치 측은 "한국 정부는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시장과 채권자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 은행 시스템을 지원해온 오랜 전통이 있는데 최근 이런 경향성이 더욱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사까지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한 조치를 예로 들며 전 세계적으로 이례적이고 공격적인 지원 정책으로 평가했다.
신용평가사가 통상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해당 금융기관 자체 펀더멘털과 정부 지원 가능성을 함께 보는데 이번 신용등급 상승은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본 데 따른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수익성이나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됐다기보다는 금융기관에 대한 현 정부 스탠스를 반영해 등급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코로나19 영향으로 경기 하강 우려가 높은데 혹시 모를 금융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금융기관을 지원해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렇듯 금융기관 보호자 역할을 자청하면서 신용등급이 올랐지만 한편으론 지나친 통제와 간섭에
연초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와 은행에 배당 성향을 20% 밑으로 낮추라고 권고해 주주들에게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 채권자 쪽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개인투자자를 포함한 주주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혜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