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을 위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하반기로 넘어갔다.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 펼쳐지면서 하반기 국회가 공전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주식시장 활황으로 기회를 맞았던 디폴트옵션 도입은 좌초 위기에 놓였다는 평가다.
다만 여당과 금융투자업계 등을 중심으로 디폴트옵션 상품에 '예금 등 원리금보장상품도 일부 넣을 수 있다'는 중재안이 부상하고 있다. '법안 통과가 우선'이라는 의견이 나왔고, 공감대를 어느 정도 얻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처럼 예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을 디폴트옵션에 포함하면 제도 도입 의미가 사라지고 결국 퇴직연금 수익률도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아직 지배적인 상황이라 국회에서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29일 국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환경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디폴트옵션 도입에 대해 논의했지만 "양대노총 의견을 다시 들어보자"며 심사를 보류했다. 소위는 지난달 3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의견을 이미 청취했지만 디폴트옵션이 결국 가입자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기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다시 의견을 들어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한국노총 참석자는 현행 제도가 금융회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사실상 원리금보장상품을 강요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디폴트옵션 도입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에서는 100인 미만 영세사업장 근로자 보호 문제를 언급하며 디폴트옵션 도입에 유보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국회에서 디폴트옵션 도입 논의가 지지부진한 진짜 이유는 원리금보장상품 포함 여부를 두고 금융업권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디폴트옵션 도입을 통해 연금 투자를 촉진하고 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원리금보장상품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퇴직연금을 예금으로 운용하려면 가입자가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고, 선택을 안해도 예금으로 운용된다"며 "디폴트옵션 상품에 예금을 넣으면 현행 제도와 다를게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미국, 호주와 달리 일본은 디폴트옵션 상품에 예금을 포함했는데, 결국 대다수 가입자들이 또 예금을 선택해 연금 수익률이 여전히 2%대에 머물러있다. 반면, 타깃데이트펀드(TDF) 등으로 대부분 운용되는 미국과 호주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연 7~8%대에 이른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더라도 원리금보장상품을 선호하는 가입자는 디폴트옵션이 적용되기 전에 원리금보장상품을 선택하면 된다"며 "가입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줬지만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사전에 지정한 펀드 등으로 운용되는게 디폴트옵션"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도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하면 제도 도입 취지가 훼손다는 의견이 많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은 지난달 초 비공개 간담회에서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될 경우 DC형 디폴트옵션 제도를 통해 추구하려는 정책적인 효과가 사실상 제한되고 실제 내용적으로는 제도 도입 효과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비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총 255조원의 퇴직연금 중 130조원을 보유한 은행업권에선 디폴트옵션 상품에도 예금등 원리금보장상품을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의견을 고려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원리금보장상품 포함 여부를 두고 진통을 거듭하자 일각에서는 중재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예금을 디폴트옵션 상품에 포함하는 대신 한도를 두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연금을 가입자가 직접 운용할 때 주식형 펀드에 70% 이상 투자하지 못하도록 한도를 두는 것과
환노위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중재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법 체계상 예금은 포함할 수 없지만 만약 포함해야 한다면 최소한도로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지웅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