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부리레터]
"전셋값이 무서워서 임대주택으로 등록된 집만 찾고 있어요.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고 과도하게 인상을 못하니까 '임사자' 물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서울 노원, 주부 B씨)
전월셋값이 폭등하면서 '임대사업자 주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4년(2+2년)후에는 시세대로 값을 올릴 수 있는 일반 전월세 매물에 비해 임대사업자가 내놓은 '등록 임대주택'은 계약 때마다 최대 5% 내 인상만 허용됩니다. 이 때문에 급등하는 전셋값에 불안감을 느낀 실수요자들이 임대사업자 물건은 앞다퉈 계약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당정이 아파트에 이어 빌라 등 다가구주택에 대한 임대사업자를 폐지하고, 기존 임대사업자들에 대해 혜택을 줄이기로 결정하면서 임대사업자는 폐지의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임대차3법 이후 전월세 시장이 폭등하고 있는데 임대사업 제도까지 폐지돼서 앞으로 '저렴한 임대 주택' 공급이 끊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등록 임대사업자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임대사업자는 정부에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각종 세제혜택을 받는 대신 임대의무 기간 동안 임대료를 5% 넘게 못 올리는 규제를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장기임대 8년 이런 식으로 의무기간을 정해놓고 임대사업자가 그 기간 동안은 세입자에게 5% 한도 내에서만 임대료를 인상해주는 대신, 종부세 합산 배제나 양도세 중과 배제 등 혜택을 받았죠. 정부 입장에서는 임대차 시장 안정에 기여하는 대신 그만큼 정부가 세금 혜택을 준 겁니다.
그런데 집값이 급등하면서 정부가 돌연 태도를 바꿨어요. 임대사업자 등 다주택자들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계속 혜택을 줄이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7·10 대책에서 아파트에 대한 신규 등록이 폐지됐는데 이번에는 아파트가 아닌, 원룸이나 빌라, 오피스텔에 대한 등록도 막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앞으로 아파트든 빌라든 임대사업 등록을 못 한다는 거예요. 임대사업 제도를 완전히 없애는 거죠.
또한 임대사업자 혜택을 다 없앴습니다. 임대사업자가 임대기간이 끝난 후 양도할 때는 원래 양도세를 중과하지 않고 일반세율을 적용해 주는데요. 이때 매각 시한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8년짜리 임대가 끝난 다음, 그날부터 10년 뒤에 팔아도 중과세율을 배제해주는 거였죠. 그런데 앞으로는 그 매각 시한을 말소일부터 6개월로 줄이는 거예요. 또 임대사업을 자진말소한 경우도 양도세 중과를 배제해주는 기간이 원래는 1년이었는데 그 시한도 6개월로 줄여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양도세 중과 맞기 싫으면 의무임대 기간이 끝났으면 무조건 6개월 내 팔라는 얘기인 거죠.
그리고 임대사업자는 종부세 합산 배제가 적용됐죠. 종부세 계산할 때 그 주택을 포함하지 않았죠. 그런데 앞으로는 의무임대 기간이 끝나면 정상과세로 전환됩니다. 즉, 이 말은 의무임대가 끝난 주택은 종부세 계산에 포함되기 때문에 다주택자인 임대사업자는 엄청난 세금폭탄을 떠안게 됩니다.
그렇게 장려하던 임대사업자를 이번에는 아예 폐지까지 시키다니, 왜 그런걸까요?
정부 입장에서는 매물이 쏟아져나와야 집값이 떨어질 텐데, 매물이 안 나오니까 특단의 조치를 한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종부세·양도세를 강화했으니 세금이 무서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쏟아낼 줄 알았는데 전혀 나오지 않았죠. 다주택자들은 세금이 무서운 것은 맞지만 차라리 증여하자며 버티기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급매를 쏟아내게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 임대사업자 물량이라도 빨리 시장에 나오라고 재촉하는 겁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작년 8월부터 최근까지 의무임대 기간이 끝난 임대주택(자진말소)은 20% 정도 시장에 풀렸지만, 해당 임대주택은 2%만 매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임대사업자들이 임대의무 기간이 끝났는데도 매물을 안 내놓은 셈이죠. 그러자 정부가 양도세 중과배제 혜택을 받을수 있는 기간을 6개월로 줄여서, 임대 묶어놨던 것 빨리 풀고 빨리 팔라고 재촉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임대사업자 입장에서는 양도세 중과배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6개월 내 팔아야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장에 내놔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렇다면 임대사업자 매물 쏟아질까요? 사실 이 법은 임대사업자에게는 엄청난 타격입니다. 특히 빌라 임대사업자들은 패닉이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아파트는 걱정이 덜하지만, 빌라나 다가구 주택을 임대한 사람들은 6개월 내 매물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임대주택은 세입자가 있는 주택이죠. 임대차법 시행에 따른 계약갱신청구권으로 매매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세입자가 낀 물건은 투자용이 아닌 이상 선뜻 사려는 사람이 없죠. 또한 빌라나 다가구는 아파트보다는 덜 오른다는 인식 때문에, 무주택자들 입장에서는 매수하기보다는 차라리 청약을 기다려야 해서 실수요자가 선뜻 매수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폐지로 인해 임차인의 주거비용 부담도 갈수록 증가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어요.
"지금 임대주택은 빌라, 다세대가 대부분이고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나 주거비를 부담스러워하는 1인 가구가 많은데 누가 이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해 줄지 걱정입니다. 임대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지고 이는 기존 집값 상승으로 전이될 수 있습니다."(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
임대사업자의 임대주택은 그 이전부터 5% 상승을 적용받고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월세로 임대사업자의 의무임대 기간 동안 거주가 가능했어요. 그런데 앞으로 이런 매물이 줄어드는 겁니다.
어차피 임대차법 시행으로 모든 주택에 5% 인상이 적용되는 것 아니냐고요? 작년 7월 새 임대차법이 시행됐죠. 그 결과 일반 임대주택도 5% 인상률(전월세상한제) 제한을 받지만, 단 한 차례만 계약갱신청구(계약갱신청구원)를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임대 4년(2+2)이 끝났을 때는 집주인이 5%와 상관없이 임대료를 책정할 수 있는데, 이때 전셋값이 크게 뜁니다. 앞서 2년 전 올리지 못한 임대료까지 크게 올리는 거죠.
그런데 앞으로는 임대의무 기간이 끝난 임대주택들이 일반 주택으로 전환되면서 요즘처럼 '미친 전셋값' 상황에서 유일하게 저렴했던 매물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가뜩이나 재산세, 종합부동산세가 부담된 집주인들 입장에서는 이제 의무임대를 지킬 필요도 없으니 '최대한 시세대로 받자'며 시세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시장에선 "그나마 반값 전세 물량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졸속정책"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임대사업자의 반발이 커지자 여당은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생계형 임대주택사업자'의 세제 혜택을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어요. 생계형 사업자는 신규 등록을 계속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어요. 그러나 아직 어떠한 것도 확정되지 않았을뿐더러, '생계형'을 구분하는 것도 명확하지 않아 임대사업자들은 여당안에 대해 "법이 만들어지면 국민들이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락가락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점입니다. 임대사업자 C씨는 "부동산 문제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인데 우선 정책을 발표하고 반발하면 땜질 처방식으로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면서 "부동산정치를 하는 정치권 때문에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