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4일 지난해 8월 발표한 8·4 공급대책 중 정부과천청사 유휴용지에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던 계획을 10개월 만에 철회했다. 이 대책에 따른 수도권 공급계획 중 지방자치단체 반발로 취소된 첫 사례다. 향후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등 지자체가 반대하는 타 용지 공급계획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어 8·4 공급대책의 근간이 흔들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정 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간사는 이날 국토교통부와 당정협의를 진행한 후 "정부청사 용지 개발 대신 과천시 과천지구 등의 자족용지 용도를 전환해 3000가구, 다른 지역 신규 택지에서 1300가구 이상 등 기존 안(4000가구)보다 많은 물량을 공급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과천청사 앞 유휴용지에 주택 4000가구가량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중 절반가량을 공공임대로 공급할 예정이었다. 이 지역은 서울과 가깝고 주변 기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8·4 공급대책 중 가장 관심이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발표 후 과천시민들은 과잉 개발 등을 이유로 반발했고 지난 3월 김종천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절차에 들어갔다.
여당 소속 지자체장의 주민소환 위기에 결국 정부여당은 기존 계획을 철회했다. 당초 계획보다 주택공급 물량을 300가구 늘렸지만 이미 발표한 택지계획을 취소한 잘못된 사례를 남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소영 민주당 대변인은 "양호한 입지와 정부 계획 대비 초과된 물량 공급, 적극 이행 협조라는 3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 정부는 과천뿐 아니라 다른 지역과도 정책 협의를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여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과천 외에는 아직 3가지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대체용지를 논의 중인 곳은 없다"고 말했다.
[채종원 기자 / 문재용 기자]
과천 청사용지 취소 후폭풍
국토부 관계자들도 당혹감
"여당이 이렇게 쉽게 바꾸나"
부동산 공급계획 신뢰 추락
정부과천청사 앞 유휴용지에 공공주택을 짓겠다는 정부 계획이 주민 반발로 무산됐다. 주민 의견 수렴 없이 급조한 공급대책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과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주민 반발이 거세다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계획의 대대적인 축소나 변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4일 국토교통부는 "정부과천청사 유휴용지를 개발해 4000가구를 공급하는 대신 과천지구 등 대체용지를 마련해 4300가구를 공급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당초보다 많은 주택을 보다 이른 시일 내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지만 결과적으로 주민 압박에 정부가 백기를 든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는 예견됐던 상황이란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지난해 8월 4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은 합동으로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방안'을 발표했다. 이른바 '8·4 공급대책'이다. 세금 인상과 대출 규제로 수요를 억제해도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다급해진 청와대와 여당이 정부를 닦달해 부랴부랴 내놓은 정책이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주민들과 소통도 없이 대책이 결정됐다는 점이 화근이었다. 대책이 발표되자마자 인근 주민들은 "주민 의사도 묻지 않고 수천 가구 아파트 건설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어이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교통 인프라스트럭처와 편의시설 부족 등의 문제가 더 심해질 것이란 주장에 정부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심지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자치단체장들도 주민들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여당이 먼저 꼬리를 내리니 정부는 버틸 재간이 없었고 결국 대책을 내놓은 지 10개월 만에 예정용지를 취소하게 된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천 주민들 반발이 계획 변경으로 이어지는 것을 봤으니 다른 지역 주민들도 형평성을 내세워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라며 "정부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정부과천청사 개발계획이 백지화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노원구 태릉CC 인근 주민들은 "태릉CC 개발 전면 백지화를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릉CC 인근 주민 A씨는 "태릉CC 주변을 지나는 화랑로는 지금도 서울 내 혼잡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도로"라며 "1만가구를 새로 지으면서 도로는 그대로 놔둔다는 건 이 동네 주민들은 출퇴근도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부면허시험장에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친 상황이다. 당초 계획했던 서울 종로구 송현동 용지와의 맞교환도 무산됐다. 마포구청은 "해당 용지에는 남북 경협시설이나 첨단 산업을 유치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이다.
정부도
[김동은 기자 / 문재용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