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면받는 K-스톡옵션 ◆
스톡옵션을 받는 조건으로 한 벤처기업에 합류한 A씨. 4년간 고생하고 상장 후 스톡옵션을 행사(매수)했다. 13만주를 약 6억원에 취득했지만 당시 13만주의 시장가격이 76억원에 달해 70억원 가까운 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 예상되는 차익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하는 세제에 따라 30억원 가까운 돈을 세금으로 내야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물론 30억원을 세금으로 내도 40억원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당장 세금으로 낼 현금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결국 여기저기에서 대출을 받아 세금을 내야만 했다. A씨의 세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보유 중인 주식을 팔 때, 매도 금액과 차익에 따라 20~25%의 양도소득세도 내야 한다.
마포에 위치한 스타트업 B사의 김 모 대표.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로 불리는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이직하려는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주겠다고 제시했다. 회사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직원은 연봉이 2000만~3000만원이 뛰는 상황이었다. 직원은 "네카라쿠배에 가도 수천만 원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는데 나중에 행사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벤처기업 스톡옵션은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최근 벤처·스타트업들은 개발자 구하기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네카라쿠배'라 불리는 대형 IT 기업들이 높은 연봉과 복지를 제공하면서 우수한 개발자들을 데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의 유일한 무기는 '스톡옵션'이다. 하지만 스톡옵션 '대박'을 가로막는 현행 제도는 오히려 '네카라쿠배'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대형 IT 기업들도 스톡옵션을 직원들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스톡옵션 행사(주식 매수) 시 3000만원 한도의 비과세가 적용된다. 그러나 3000만원 한도의 비과세는 너무 적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제1차 벤처붐이 불었던 1999년 당시 비과세 규모가 5000만원이었는데 당시 강남 아파트 가격은 2억원에 불과했다. 비과세 규모가 2억~3억원까지는 올라야 비슷한 혜택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격스톡옵션제도도 벤처기업 직원들에게만 부과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가 아니라 매각할 때로 세금을 미룰 수 있고 세율이 높은 근로소득세가 아닌 양도소득세로 세금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행사 금액이 5억원 이하여야 해서 스톡옵션을 많이 부여받은 직원들은 사용할 수 없다. 또한 1년 동안 팔지 않고 예수해야 하는 등 복잡한 조건이 적용돼 사용도가 낮다는 지적이다.
적격스톡옵션제도를 사용하려다가 포기한 한 벤처기업 직원은 "제도의 문제점을 피해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통로만 만들어 놓고 이를 해결했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 편의"라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스톡옵션제도 전반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톡옵션으로 대박이 날수록 불리한 구조는 특히 비상장 벤처(스타트업)에서 부여하는 스톡옵션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굳이 비상장 벤처에 가 긴 시간 고생을 하느니 상장된 대형 IT 기업에 가서 편하게 스톡옵션을 받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김태훈 하늘회계법인 회계사는 "우리 세법은 스톡옵션을 기업이 직원에게 주는 소득으로 보고 소득세에 합산해 계산하며, 수익이 크면 세율도 높아진다"면서 "창업 생태계에 스톡옵션을 통해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기 위해서는 과세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우리나라가 과거 IT 버블이 꺼지면서 나온 부작용을 없앤다고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세금을 많이 내게 만들었더니 결국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됐다"면서 "지금 대우를 못 받아도 회사와 함께 크면 대박이 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기부는 스톡옵션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코인광풍으로 청년층의 박탈감이 커진 상황에서 스톡옵션을 청년들의 '계층 상승 사다리'가 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향이다. 차정훈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현재 스톡옵션 제도는 비상장 벤처에 젊은이들이 오래 다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사를 장려하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면서 "연말 세제 개편에 스톡옵션 제도 개편안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업계에서는 2023년 금융투자소득 과세에 맞춰 비상장 벤처기업의 스톡옵션 행사 시 세금을 내는 것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10억원 이하의 장내 주식에
하지만 현재 정부는 2023년부터 모든 금융투자소득에 20~25%의 세금(기본공제 5000만원)을 부과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소액의 스톡옵션도 장내에서 매수할 경우 똑같은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이덕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