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화폐 규제 칼뺀 美 ◆
미국 정부가 고액의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 가상화폐 규제에 나섰다. 미 재무부는 앞으로 1만달러 이상 가상화폐 거래 시 국세청(IRS) 신고를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재무부는 "가상화폐는 탈세를 포함한 광범위한 불법행위를 가능케 해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앞으로 가상화폐 거래 시 탈세 등 위법행위를 엄중히 규제해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 등 관련 중개기관들은 고객의 1만달러 이상 거래 내역에 대해 국세청 보고가 의무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인의 거래 내역도 신고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이런 조치를 포함해 다양한 방법으로 단계적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화폐 회계·감사 업체인 베라디의 켈 캔티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조치는 '앞으로 사람들 간 가상화폐 거래의 모든 내역을 파악할 것'이란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방안은 재무부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함께 논의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SEC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블록체인을 강의했다. 그는 규제당국 수장이 된 이후 감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의회 등에서 밝혀왔다.
이날 오전(미 동부시간) 4만2000달러를 넘어섰던 비트코인 가격은 새로운 규제가 도입될 것이라는 소식에 3만8000달러대로 추락했다. 이후 반발 매수세가 유입되며 4만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민주·공화 양당 모두 가상화폐 관련 규제 입법을 2021년 최우선과제로 설정한 상태라 다양한 규제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캐나다와 노르웨이 중앙은행도 가상화폐의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금융 시스템 점검 보고서에서 "가상자산 시장이 커지면서 금융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며 "가상자산의 고유한 특징과 빠른 진화 속도를 감안할 때 가상자산을 분류하고 규제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의 금융안정국장은 "가상화폐 변동성에 대한 노출이 커지면 금융 안정성에 위험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가상화폐 시장에 악재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양성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1만弗 이상 거래 신고 의무화
비트코인 440만弗 털어간
송유관 해킹 사건이 '경종'
돈 세탁 막고 취약층 보호
과세 투명화 '세 마리 토끼'
"규제로 시세회복 더딜것"
"장기적으론 시장 양성화"
연준 "CBDC 연구 곧 공개"
미국 정부가 1만달러 이상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신고 의무를 부과하겠다고 20일(현지시간) 밝힌 것은 자금세탁을 방지하고, 과세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또 투자자 보호라는 목적까지 달성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고액의 가상화폐가 범죄 대가로 지급되는 등 탈법을 양산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고자 나섰다. 사이버공격으로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가동을 중단했던 미국 최대 송유관 운영사 콜로니얼파이프라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해커들에게 440만달러의 비트코인을 지급하고 나서야 송유관 운영을 정상화할 수 있었다. 이번 규제는 콜로니얼파이프라인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법 집행당국과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와 관련한 투명성 부족 탓에 랜섬웨어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고 지적해왔다"며 "이번 조치로 정부는 해커들로부터 가상화폐 지급을 요구받은 미국 기업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가 가상화폐 거래 신고 기준선을 1만달러로 설정한 것은 '고액현금거래보고(Currency Transaction Report·CTR)' 제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 금융회사들은 예금, 출금, 환전 등 각종 금융 거래 시 1만달러가 넘는 현금 거래에 대해 국세청(IRS)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이는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기초 자료 수집 목적이 강하다.
국내에서도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1000만원 이상 고액현금거래가 보고되고 있다. 2006년 도입 당시 5000만원이 기준선이었고, 점차 기준선이 낮아져 현재는 1000만원이다. 이 기준선은 미국이 1만달러 거래에 대해 CTR를 의무화한 것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CTR는 피싱 등 정상적이지 않은 금융 거래를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또 그간 기초 거래 내역이 파악되지 않아 과세 대상에서 빠졌던 가상화폐 거래 내역 파악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 국세청 인력을 증원해 가상자산 거래 관련 세제 업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구체화한 첫 번째 조치가 가상화폐 분야의 CTR 의무를 만든 것이다. 미국은 현재 가상화폐 거래에 따른 차익이 발생할 경우 주식 거래와 똑같이 과세하고 있다. 투자자산을 1년 이내에 매각하면 본인의 소득세율(10~37%)에 따라 납세의무가 부과된다. 하지만 가상자산을 1년 이상 보유한 후에 매각하면 세율은 0~20%로 내려간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이날 가상화폐, 특히 달러에 가치를 연동시킨 '스테이블코인'을 거론하며 시스템 리스크 전이 가능성을 경고했다. 파월 의장은 "사용자뿐 아니라 보다 넓은 금융 시스템에 잠재적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역시 단호하게 규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이날 "기술이 항상 진화하듯이 시장도 진화한다"며 "SEC는 가상화폐, 사이버공격, 핀테크 등 이슈를 다룰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이 해트필드 뉴욕 인프라캐피털어드바이저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발표된 재무부 규제를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하며 추가 규제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규제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장 마크 보네파우스 텔루리언캐피털 매니저는 "가상화폐 시장은 단기적으로 하락 위험이 남아 있다. 시장이 단숨에 회복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규제가 빠른 시세 회복을 억누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면서 연준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다. 연준은 올여름 그간 연구해온 CBDC 관련 보고서를 공개할 것이라고 CNBC가 이날 보도했다. 보스턴연방준비은행이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함께 연준의 디지털화폐를 연구하고 있다. 지난 3월 파월 의장이 "CBDC 도입은 의회와 정부, 광범위한 대중으로부터 승인받을 필요가 있다"며 "서두르지 않겠다"고 언급했던 것과 많이 달라진 분위기다.
중국 정부가 CBDC 상용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연준의 준비 속도에 탄력이 붙는 모습이다. 지난 2월 중국 당국은 춘제(중국 설)를 맞아 베이징 시민 5만명에게 디지털위안을 200위안(약 3만4000원)씩 지급했다. 특히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
[뉴욕 = 박용범 특파원 / 서울 = 진영화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