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콕] 지난달 20일 종가 기준 사상 최고점(3220.70)을 찍은 코스피가 이후 다시 보합세로 접어들었다. 국내외 기업 실적 발표에 대한 우려, 삼성그룹 상속 지분 미공개에 따른 불확실성 등이 조정 배경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3일부터 재개되는 공매도에 쏠리고 있다. 매일경제가 국내 가치투자 1세대이자 원조로 손꼽히는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고문(전 대표)을 만나 현재 주식시장에 대한 진단과 대응전략을 물었다.
이 고문은 우선 현재 기업들의 이익창출 능력과 금리 수준을 고려했을 때 "주식시장 자체는 비싸지 않다"고 평가했다. 다만 공매도가 재개되면 지금까지 시장의 상승을 이끌어왔던 성장주를 중심으로 종목별로 차별화 장세가 심화되어 나타나고, 특히 이익성장 대비 고평가된 종목들의 경우 가격 거품이 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그동안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이 많이 몰리면서 바이오, 배터리, 게임 등 인기 업종은 개별 종목의 고평가 여부와는 상관 없이 모든 종목이 같이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면서 "공매도가 재개되면 종목별로 주가가 차별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제 투자자들이 종목 선택을 잘해야 되고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1. 가치투자 혼돈의 시대…현재 가치냐, 미래 가치냐.
A. 가치를 형성하는 요인은 안정성, 성장성, 수익성 3가지입니다. 안정성은 과거를 의미합니다. 과거 벌어들인 자산이 기업에 내재돼 있는 것이죠. 땅을 샀든 현금을 가지고 있든 유가증권에 투자했든 간에 말입니다. 현재를 의미하는 것은 현재 기업이 벌어들이고 있는 수익의 양과 질을 보는 것입니다. 현재라는 기준은 과거 한 1년 정도를 얘기합니다. 이것을 현재가치 내지 수익가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것은 앞으로 산업이 얼마나 발전하고 기업의 제품 수명주기가 어떻게 되고, 확장될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미래가치 내지 성장가치라고 표현할 수 있죠. 어떤 한 주식의 가치는 과거 벌어들인 수익 더하기 현재 벌어들이는 수익, 그리고 앞으로 벌 돈을 합산하면서 내재가치가 형성이 되는 겁니다.
기업의 가치는 쉽게 안변하는데 외부 환경이 바뀌면서 때로는 과거를 중시할 때도 있습니다. 1993~1994년에는 땅이 많은 기업 주가가 각광을 받았죠. 삼부토건이나 성창기업이 10배 오르고, 만호제강 같은 땅이 많은 기업은 12배까지 시세가 올랐습니다. 그 이전에 수익가치주 강세장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1992~1993년 외국인에게 시장을 적극 개방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모르던 기법들, 당시만 해도 주가수익비율(PER)이란 기법이 잘 알려지지 않았었습니다. 당시 PER 1배짜리 주식이 있었는데, 그게 농약주든 시멘트 과자주든 업종을 가리지 않고 바로 10배 올랐습니다. 적정 PER에 수렴을 하게 된 것이죠. 1999년 닷컴버블, 3차 산업혁명 때는 시장이 오직 미래 가치, 성장만 보고 투자를 한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적자가 나도 앞으로 벌면 되니까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그럴 때 활약했던 기업들이 통신주로 KT나 SK텔레콤 같은 주식이 크게 올랐습니다.
조심해야 될 것은 각각의 사이클도 있고, 개개인 성향이나 취향도 있는 것입니다. 과거가치, 현재가치, 미래가치 각각의 가치들은 주변 환경에 따라서 혹은 투자자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추구하는 경향이 달라집니다. 1999년에는 강력한 그로스(성장) 사이클이 왔지만, 그 이후 2000년부터 2014년 1분기까지는 강력한 밸류(가치) 사이클이 왔었고요. 최근 6년간은 강력한 그로스 사이클이 오고 있는 것이죠. 최근에는 미래 가치에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이제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저처럼 겁이 많고 소심하고 소박한 투자자 같은 경우 주머니 속 동전이 더 중요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수익은 우리가 예측하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최고의 우량주라고 할 수 있는 KT나 SK텔레콤 같은 경우도 1999년에 최고점을 찍었죠. 예를 들면 그 당시 KT를 20만원에 샀으면 지금 약 2만8000원이니까 7분의 1 토막이 돼 있는 것이죠. SK텔레콤도 그 당시 50만원에 샀으면 지금은 30만원이니깐 40% 하락한 거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SK텔레콤은 과거 20년간 이익이 10배 늘었거든요.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기대치에는 못 미친 것이죠. 시장은 '20~30배 성장하겠지'라고 봤는데 그만큼 성장을 못하니까 주가는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운용하는 자금의 성격이나 성향, 시장 사이클이나 패러다임까지 맞춰서 해야 되니까 어려운 일이긴 해요. 이런 것을 다 감안해서 투자해야지, 막연하게 무조건 그냥 자산 가치주가 좋다, 성장 가치주가 좋다, 수익 가치주가 좋다, 이런 논리는 이제 맞지 않습니다.
Q2.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 15배…고점인가, 더 오를까.
A. 누가 됐든 간에 주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그 순간에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생각해요. 열 번 얘기해서 한 여덟 번 틀렸으니까, 제가 얘기하는 것 반대로 하면 거의 맞는데, 또 가끔은 맞히기도 하니까 이게 도움이 전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현상을 진단하고 현재 좌표를 짚어서 방향을 잡는 게 맞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PER가 15배라는 얘기는 그 역수가 일드(수익률)가 되잖아요. 우리나라 코스피에 상장돼 있는 주식은 시가총액이 지금 2000조원을 넘어섰어요. 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이 과거 10년간 보면 보통 평균적으로 100조원 정도는 났어요. 제일 많이 났을 때가 세후 135조원이 2~3년 전에 피크였고, 그 전에 60조~70조원도 갔었고 평균적으로는 100조원 정도 벌어요. 올해 시장 컨센서스는 지난주에 보니까 140조원까지 올라왔어요. 상식적으로 보면 한 130조원은 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130조원을 시총 2000조원으로 나누면 그게 6.65% 정도 나와요. 6.65%가 대한민국에 성장돼 있는 상장기업들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파워인 셈이죠. 은행 이자가 1.2%니까 (주식 이익률이) 훨씬 높잖아요. 이걸 일드갭 또는 일드스프레드라고 합니다. 이게 벌어질 수록 주식이 유리한 것입니다. 금리가 확 올라가지고 5%까지 가서 (일드갭이) 좁혀지면 주식은 다 팔고 채권을 사는 게 맞는거예요. 이런 식으로 이제 진단을 해보면 지금 현재는 주식은 비싸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문제가 뭐냐면 금리가 오르거나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면 주가는 당연히 떨어지겠죠. 모든 이들이 예상한대로 올해 기업이익이 140조원까지 난다고 하면 코스피는 좀 플랫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고, 내년에는 이익이 더 난다는 확신이 들면 주가가 올라가는 거죠. 그런데 올해 실제로 140조원이 난다고 하더라도 내년에는 약 120조원으로 꺾일 것이라고 하면 주가는 못 오르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판단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Q3. 5월 공매도 재개, 시장에 어떤 영향.
A. 누가 봐도 공매도 대상은 일단 코스피200, 코스닥150 주로 대형주이니까 '대형주를 피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공매도 재개가 지금(촬영일 4월 22일) 한 일주일 정도 남았잖아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미리 대응해 대형주가 조정을 받고 중소형주가 (공매도 재개) 직전 날까지 올라버리면 실제로는 공매도 재개 이후 거꾸로 대형주가 급등할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확실한 건 그런 것 같아요. 공매도라는 게 시세 변동을 높인다는 거에 대해서는 역기능이 있는데, 순기능도 있습니다. 너무 과하게 주가에 거품이 생길 때 그걸 억제해주는 순기능도 있는 거예요. 시장을 정상화시키고 수급의 공백을 메워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 과거 사례도 이런 일이 있었을 때 공매도 금지가 풀리고 나서 오히려 주가가 올랐어요. 저는 좀 중립적으로 보고 있어요.
전략에 있어서는 몇 가지 좀 생각할 게 있습니다. 일단은 좀 거품이 끼어 있는 주식인데 수급은 좋아요. 예를 들면 유통 주식은 별로 없는데 마침 상장지수펀드(ETF)에 포함이 돼 있어가지고 수급은 좋은 거죠. (공매도가 재개되면) 수급이 깨질 수 있으니까 변동성이 굉장히 커질 수 있겠죠. 그리고 이제 실적이 안 좋아지는 기업들도 집중 타깃이 돼서 원래는 한 10% 빠질 것이 순간적으로 20~30% 주가가 떨어질 수 있죠.
공매도가 재개되면 원래는 이제 중소형주가 유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아무래도 이렇게 되면 대형주 기피현상은 기본적으로 벌어지는데, 앞서 말씀드렸지만 그게 너무 선반영되면 또 반대로 갈 수 있으니까 그런걸 감안해서 전략을 짜야 될 것 같습니다.
Q4. 수급은 좋은데 고평가된 업종은 무엇.
A. 최근에 유행하는 ETF들이 있잖아요. 아무래도 4차 산업에 관련된 성장 쪽에 관련된 ETF, 2차전지 ETF를 예를 들 수 있죠. 주식들이 군을 이뤄서 업종 전체가 오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바이오 하면 바이오 전체가 오르고, 배터리 하면 배터리 관련 모든 종목이, 게임주도 다 같이 오르죠.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거죠. 이제는 좀 차별화될 시기가 왔거든요. 굉장히 슬림화될 수 있어요. 같은 게임주라도 특정 몇 개, 지금도 성장하고 여전히 저평가된 기업만 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도태될 것입니다. 바이오 중에서도 진짜 지금이라도 더 성장할 수 있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바이오만 갈 겁니다. 배터리나 2차전지도 명함이 엇갈릴 수 있어요. 잘하고 있는 기업도 있지만, 앞으로 좀 어려워질 기업도 있을 것이죠.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직까지 결정이 안 난 것이거든요.
앞으로는 좀 차별화될 것입니다. ETF라는 게 덩어리로 묶어서 가다 보니까 저평가되나 고평가되나 모든 종목이 같이 오르는 경향이 강했죠. 공매도가 재개되면 이런 쪽이 좀 약화될 수 있어요. 이제 종목 선택을 잘해야 되고 정말 공부도 많이 하고 연구도 많이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다소 좀 쉽게 돈을 벌었다면 이제는 돈벌기 정말 어려운 시대가 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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