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 가격이 7천만원 밑으로 하락한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사진 출처 = 연합 뉴스] |
20대 코인광풍에 기자도 올라타봤다. 그것도 피같은 내돈으로. '코린이' 기자 역시 주변 지인들이 비트코인으로 2000만원을 벌어 보증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 200만원에서 시작해 한달 사이 400만원을 벌었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다. 하지만 다들 위험하다고 하는 걸 왜 하느냐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컸다. 왜 오르는지 왜 떨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코인을 사고 파는 20대들. 하지만 1초마다 바뀌는 계좌 잔고 화면을 바라보며 "올라라 올라라"를 되뇌이는 모습에서 희망을 잃은 20대란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도 선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20대 대학생, 직장인들이 모인 코인 투자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대학생 코인투자 동아리나 소모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주식을 공부하는 동아리 안에 코인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소모임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지난달 대학생 14명이 모여 만든 코인투자 소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A씨(28세)는 "결혼을 50세에 하고, 집을 70대에 살 순 없지 않은가"라며 "이런 유동성 장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단기간 고수익에 베팅하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자에게 2시간 분량의 비대면 강의 영상을 건넸다. 강의는 '코인 투자 관점', '차트 기초 분석', '알아두면 좋은 코인 관련 사이트' 총 3파트로 구성됐다.
수업 초반부터 고비였다. 피보나치 차트툴을 이용해 유의미한 상승과 하락을 파악하고 자신의 포지셔닝을 잘 해야 한다는 설명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주변에 코인 좀 한다는 친구들에게 급하게 "너도 혹시 피보나치 툴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거 필요 없어. 몰라도 다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친구에게 "그럼 넌 어떤 코인을 살지 뭘 보고 결정해?"라고 되물었다. 친구는 "트위터나 유튜브에서 종목을 정리한 정보를 얻거나 코인 차트를 보고 오르고 있는 코인을 온라인에서 검색해서 정보를 얻는다"고 답했다.
코인 투자자들의 현실을 알고 2시간 분량의 강의에다 유튜브의 도움도 받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실전이다.
↑ 던프로토콜을 구매했다. |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거래소간 차익거래였다. 국내에는 코인 투자자가 많아 코인 시세가 전반적으로 해외보다 비싸다.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산 뒤 비트코인을 시세가 더 비싼 국내 거래소 계좌로 송금하고, 국내 거래소에서 되파는 것이다. 이같은 투자 방법을 소개해준 이는 4년차 코인 투자자이자 취업 준비생인 B씨(27세)다.
B씨는 "보따리상은 일반 비트코인 거래가 아닌 프리미엄 차이로 돈을 번다"라며 "김치 프리미엄(국내와 해외 거래소의 시세 차이)이 0%일 때 비트코인을 국내에서 해외로 옮기고, 10%로 올랐을 때 다시 한국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따리는 최소 5000만원 이상 해야 돈이 된다. 장점은 비트코인이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 상관없이 프리미엄만 신경 쓰면 된다는 점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코인 거래소간 차익거래는 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1회 5000달러, 연 5만달러를 초과하는 송금은 해외직접투자, 유학자금과 같은 특정한 목적에서만 가능한데 가상화폐 투자를 위한 송금은 불법이다. 투자는 합법, 송금은 불법인 셈이다. 결국 중국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 계좌를 트는 일을 그만 뒀다.
비좁지만 국내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단 가상화폐에 투자중인 친구에게 추천받은 업비트와 케이뱅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계좌개설을 했다. 케이뱅크 계좌를 개설하고 시중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이체하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케이뱅크에서 계좌를 개설한 후 돈을 옮겨놓고, 업비트에 케이뱅크 계좌를 연결하고 다시 돈을 옮겨 놓는다. 즉 직접 거래소에 돈을 이체하지 못하고 시중은행에 있던 내 돈이 케이뱅크를 거쳐 거래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업비트는 국내 1위 가상화폐 거래소인데 실명계좌인증이 가능한 은행은 케이뱅크 하나 뿐이다. 바이낸스와 같은 해외거래소는 원화 입금이 안되기 때문에 국내 거래소를 거쳐 입금해야 한다. 해외 투자의 경우 시중은행, 케이뱅크, 업비트, 바이낸스 무려 4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시드머니는 110만원. 불운하게도 기자가 코인 시장에 발을 디딘 22일은 약세장이 한창이었다. 지난주 미국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 상장으로 8000만원을 돌파했던 비트코인은 지난 14일부터 9일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앱을 켜자마자 유일하게 빨간불이었던 던프로토콜을 구매했다. 최대 매수 버튼을 누르자 계좌에서 현금이 사라지고 던프로토콜 124개가 들어왔다. 이 종목은 업비트에서 1주일 동안 상승률이 가장 높은 코인이었다. 불나방이 모여들다보니 던프로토콜은 이날 하루 동안 최고 1만100원까지 오르기도 하고, 최저 718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무슨 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코인은 PC게임 이용자들에게 토너먼트 대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이해하고 투자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코인 목록 중에서 그나마 익숙한 리플이란 이름이 보여서 리플도 조금 매수했다. 대부분은 그 코인이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 코인 시세의 흐름만 볼 뿐이다. 또 코인은 이자도, 배당도 없다. 그래서 적정한 가치라는 게 없고 저평가니 고평가니 하는 기준도 없다. 오르는 코인과 떨어지는 코인만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만난 20대 투자자도 시황 해설이라면서 "현재 대장주라고 할 수 있는 비트코인이 큰 폭으로 하락해 나머지 코인들 역시 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 던프로토콜은 업비트 기준 1주일 동안 상승률 1위 코인이다. |
작년 12월부터 코인 투자를 시작해 400만원을 번 지인 C씨(26)에게 던프로토콜이라는 코인을 샀다고 연락했다. 메시지를 보낸지 1분도 안 돼서 "당장 팔라"는 급박한 전화가 왔다.
20대 가상화폐 투자자인 지인은 "거긴 지금 투견장"이라며 "1분만에 9000원에서 8000원까지 떨어지는 중이다. 이런 코인을 들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했다.
1분 동안 시세가 10% 약간 넘게 움직였다는 건데 사실 거래가 많은 코인들 중에 최근 몇일 동안 이 정도의 변동성이 없었던 코인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빨간색과 파란색 화살표가 1초마다 바뀌는 상황이다. 그나마 빨간색인 순간을 포착해 시장가로 매도 주문을 해야 했다. 워낙 핫한 코인이다보니 매도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거래가 체결됐다. 그렇게 110만원으로 1363원을 벌었다. 이게 1일차의 투자 성적표다. 오르는 순간 시장가격으로 팔아 8735원에 매도했는데, 불과 1시간 뒤 이 코인은 9965원까지 올랐다.
코인을 들고 있는 동안 코인앱을 계속해서 켜놓을 수 밖에 없었다. 시시때때로 변동하는 코인가격 때문에 다른 일에는 집중을 할 수 없었다. 110만원이니 다행이지 1100만원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1100만원이 등록금이나 월세 보증금이라면 또 어땠을까.
실제로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 20대 취업 준비생 D씨는 "카드값을 갚으려고 코인을 시작했는데 그때 산 코인이 4배가 올라 110만원이 450만원이 된 적도 있다"라면서 "지금은 투자로 잃은 돈 때문에 갚아야 할 카드 값이 불고 종잣돈도 너무 많이 깎여 그만 포기할까 고민 중"이라고 한숨 쉬었다.
↑ 케이뱅크에서 업비트로 돈을 옮기면 총 보유자산에 원화 잔고가 뜨고, 가상화폐를 구입하면 해당 종목 보유 자산이 집계된다. |
주식 격언 중에 편안한 투자가 최고의 투자라는 말이 있다. 우량주를 갖고 있으면 가격이 하락해도 좋은 회사니 다시 오르겠지라는 편안한 마음이 든다. 코인은 사정이 다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재 코인 시장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20대 투자자들도 시각이 엇갈린다. 무조건 오를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언젠가 거품이 빠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한몫 챙겨서 나오겠다는 이들도 있다.
코인투자 소모임 회장 A씨는 "비트코인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에 이어 나스닥 시가총액 순위 4위에 해당하는 규모의 자산으로 성장했다"라며 "비트코인과 암호화폐가 주류 자산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지금보다도 더 큰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투자자 E씨(27세)는 "2017년부터 비트코인이 200만원도 안 할 때부터 100만원을 투자해서 최고 8000만원까지 벌어봤고 3분 안에 3000만원을 날린 적도 있다"라며 "지금처럼 급등이 끝난 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도지코인이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증명하고 있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에 올인하고 있는 청년 세대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또 이유없이 급등했던 시세가 이유없이 급락하게 되면 20대 청년들의 분노가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8년 꼴(박상기의 난)이 또 반복될 수 있다"라며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공정, 정의 나오면서 비슷한 상황이 점쳐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와 거의 똑같다"고 말다.
일명 '박상기의 난'이란 가상화폐 광풍이 몰아쳤던 2018년 당시 박상기 문재인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목표로 하는 법안을 준비중"이라고 밝혀 투자자들 사이 패닉매도가 이어졌고, 코인 시총 약 100조원이 날아간 사건을 일컫는다.
[김정은 매경닷컴 기자 1derlan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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