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정책 변곡점 ◆
4·7 재보궐선거 참패로 부동산 정책 손질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이 1가구 1주택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주택 가격(현행 공시가 9억원 초과)에서 비율(상위 1~2% 고가 주택 보유자)로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종부세는 도입 당시 초고가 주택 소유자만 내는 징벌적 세금으로 설계됐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중산층세' 혹은 '서울 거주세'로 전락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여당이 정책 선회에 나선 것이다.
당초 도입 취지대로 집값 상위 1~2%에만 종부세를 물리고 1주택 실거주자들의 과중한 세 부담은 덜어주겠다는 생각이다. 19일 민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출범한 '부동산특별위원회'는 1가구 1주택 종부세 부과 기준을 '비율'로 개편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할 방침이다. 해당 방안은 청와대와도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공시가 9억원 초과분에 대해 초과액 구간별로 종부세율이 인상되는 구조라면, 앞으로는 고가 주택 보유자를 공시가격 상위 △0.5% 이하 △0.5~1% △1~1.5% △1.5~2% 등 구간으로 쪼개 종부세를 부과하겠다는 얘기다.
간단히 말하면 전국의 주택가격을 줄 세운 뒤 상위 2% 정도까지 비싼 주택에만 종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1월 1일 공표된 공시가 기준으로 상위 1%는 15만가구, 2%는 25만가구가 해당한다.
당초 민주당은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단순 상향하는 방식도 검토했다. 그러나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다 전향적인 기준 개편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도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완화해주는 큰 틀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종부세 부과 기준인) 9억원 기준이 11~12년 전에 마련된 것이다. 저도, 기재부도 (종부세 부과 기준을 완화해달라는) 의견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홍 부총리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 잘못된 시그널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짚어보고 있다"고 답변했다.
[윤지원 기자]
'한국감정평가학회 종부세 시뮬레이션' 입수
현실화율 기계적으로 올린탓
올해 집값변동 없다고 가정때
서울 38만9000명 종부세 대상
총세액 1년새 2배 늘어 2.1조
"아파트거주자 세금 더내는 꼴
1주택자 부담 해결이 급선무"
배현진 의원 "세제 개혁 나서야"
"집 한 채가 버거운 세금을 만들어내는 애물단지가 돼버렸습니다. 확 오른 공시가에 무슨 수로 세금을 감당합니까. 평생 집 한 채에서 살아왔는데 정년이 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신세가 됐습니다."(서울 서초구 방배동 주민 A씨)
정부가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19% 끌어올리면서 1주택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다주택자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종합부동산세가 1주택자의 주거 안정까지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 인상에 따라 주택 소유자들의 고민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서울 지역 주택 소유자들에게서 향후 1조원가량의 종부세를 더 거둬들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정부가 시세 대비 공시가격(현실화율)을 끌어올리면서 종부세 부과 대상 가구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결과다. 한국감정평가학회는 향후 집값에 변화가 없어도 2022년 서울 주택 소유자들이 납부하는 종부세 총액이 2020년 대비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19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감정평가학회에 의뢰해 받은 '서울 종합부동산세 시뮬레이션'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서울 지역 종부세 부과 대상 인원은 38만9000명으로, 이들이 납부하는 종부세 총액은 2조1214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주택 매매가격에 변동이 없고, 다주택자 비율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한 결과다. 한국감정평가학회는 2022년에는 40만1000명이 2조3616억원의 종부세를 납부해 2020년(1조1868억원) 대비 세액이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감정평가학회는 매년 주택 매매가격(5% 상승, 변화 없음, 5% 하락)의 변화와 다주택자 비율(변화 없음, 30% 하락, 50% 하락)을 변수로 놓고 9개 상황으로 나눠 시뮬레이션 결과를 도출했다.
이 중 정부의 종부세 세액이 가장 크게 늘어나는 경우는 주택 매매가격이 5% 상승하고, 다주택자 비율에 변화가 없을 때다. 이 경우 종부세 고지 세액은 2021년 2조2719억원, 2022년 2조8667억원으로 늘어난다. 2019년 서울 지역 종부세 고지 세액이 8297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3년 만에 3배 넘는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셈이다.
특히 시뮬레이션 결과 주택 매매가격이 떨어져도 정부가 거둬들이는 종부세액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감정평가학회는 매매가격이 전년 대비 5% 하락(다주택자 비율은 동일)했을 때 2021년 납부 세액은 1조9710억원으로 2020년 대비 7842억원 순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 부담을 정부가 중산층에 전가하고 세금 걷기 쉬운 곳만 집중해서 징수하는 상황이 됐다"며 "진짜 종부세를 내야 할 초고가 단독주택 보유자들은 세금을 피해가고, 엉뚱하게 거래가 빈번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만 종부세를 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형평성이 다 무너진 상태에서 제대로 된 공시가격조차 매기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종부세를 동결하고 공시가격 제도를
이번 시뮬레이션을 의뢰한 배 의원은 1주택자에게는 종부세를 면제해주는 내용을 담은 종부세법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여당이 장악한 국회에서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배 의원은 "지금이라도 과세표준 조정 등 적극적인 세제 개혁을 통해 종부세 부담을 완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