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매도공세 대해부 ◆
↑ 코스피 3000선이 위협받는 가운데 연기금의 역사상 최장기간(42거래일) 순매도 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비 오는 삼일절 오후 한 시민이 우산을 쓰고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건물 앞에 세워진 황소상을 지나고 있다. [이충우 기자] |
연기금이 무섭도록 국내 주식을 팔고 있는 이유는 '자산 배분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매년 국내외 주식과 채권 투자 비중을 정한다. 향후 5년간의 중기 자산 배분 계획도 확정한다. 지난해 5월 국민연금 기금위가 정한 계획에 따르면 올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16.8%다. 지난해 목표치는 17.3%였는데 실제 연말 비중은 21.2%로 3.9%포인트 초과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한 자산배분 목표에서 전략적 허용 범위(2%포인트)와 전술적 허용 범위(3%포인트)를 통틀어 총 ±5%포인트의 허용 범위를 두고 있다. 올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이 16.8%인 점을 감안하면 11.8%에서 21.8%가 허용되는 셈이다. 그러나 코스피가 2900을 밑돌던 작년 말 기준 국내 주식 비중은 이미 21.2%로 높게 나타났다. 올 들어 코스피가 3100을 돌파해 고공 행진을 하면서 국내 주식 비중이 2021년 한도인 21.8%마저 뛰어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목표치 허용 한도까지 넘어서자 급히 비중 축소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연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는 대신 해외 주식 비중을 늘리기로 한 것은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연금 운용이 시작된 1988년 이후 국내 주식 수익률은 연평균 8.99%였지만 해외 주식 투자 수익률은 10.23%로 더 높았다. 글로벌 자산 배분 관점에서 국내 주식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었다. 국민연금의 자국 증시 투자도 중요한 원칙 중 하나지만 지금은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운용사 대표는 "국민연금이 그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글로벌 자산 배분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은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자산 배분 비중을 정하는 기금위가 전문성을 갖췄는지는 따져볼 문제"라며 "너무 급하게 팔면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데다 가격을 하락시키면서 팔게 돼 수익률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책임투자를 강조하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반대 의견이 없지 않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준칙에 수익성 말고도 공공성이 포함돼 있는 만큼 국민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해줄 책임이 있다"며 "민간 운용사처럼 단순히 자산 배분 논리로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인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류 대표는 "국민 경제 발전에 역할을 한다는 운용철학이 바로 설 때 국민연금의 재정건전성도 좋아진다"며 "국내 일자리가 증가하면 가입자 수가 늘어나 안정적인 기금 확보가 가능해지고, 기업지배구조 개선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 기금 수익률도 높아지는 식"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1900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 일본 GPIF의 일본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은 25.28%로 해외 비중 25.36%와 비슷하다.
국민연금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위가 결정하면 매도세를 멈출 수 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주가가 2000~3000선일 때 리밸런싱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기금운용본부에서 검토하고 다음 기금위에 보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체적인 자산 배분 비중을 손대기는 어렵기 때문에 현재 ±5%포인트인 목표 허용 한도를 확대하면 추가적인 주식 매도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기금위는 이달 말에 열릴 예정이다. 기금위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국민연금이 매도세를 멈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연기금 순매도에 대해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부장은 지난달 23일 자이앤트TV에 출연해 "코스피 3000선에서는 연기금의 대량 매도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려는 연기금의 전략상 코스피 2500~2600선까지는 매도 추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