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상한제 도입 이후 베를린에서 신규 월셋집 공급이 절반으로 급감했다고 독일 타게스슈피겔이 독일경제연구소(DIW) 보고서를 인용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베를린 월셋집 평균 월세는 1년 전보다 최대 11% 떨어졌다. 가격이 하락해도 공급난으로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방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콘스탄틴 콜로디린 DIW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월세상한제 도입 이후 월셋집 공급이 급격히 축소된 점이 걱정스럽다"며 "베를린에 이사를 온 사람들이나 아이가 생겨 더 큰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사람들은 집을 찾는 게 더 어려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지 못한 시민들이 결국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인근 지역 월세가 급등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베를린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포츠담의 월세는 12%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프랑크푸르트나 뮌헨, 쾰른 등 독일 대도시들 월세 인상률은 5% 이하에 그쳤다.
베를린 사회민주당(SPD)·좌파당·녹색당 연립정부는 지난해 2월 23일부터 월세상한제를 도입했다. 월세상한제는 2022년 1월까지 월세 인상을 금지하고, ㎡당 최고 9.8유로의 월세 상한을 뒀다. 베를린 내 150만개 월셋집이 이 제도를 적용받는다. 5년 기한의 관련법에 따르면 2022∼2025년 베를린 시내 월세는 물가상승률에 따라 최대 1.3%만 인상 가능하다. 다만 2014년 이후 지어진 월셋집은 이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연구에 참여한 조피 발틀 빈대학교 교수는 "집주인들이 월셋집을 완전히 수리해 월세상한제 적용 대상이 안 되게 하거나 아예 집을 팔려고 할 것"이라며 "월세를 줘서는 충분한 수익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타게스슈피겔이 전했다.
콜로디린 연구위원은 "월세상한제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관료적 장애물을 줄이고, 건축 당국의 부족한 직원을 채우는 등 신규 주택 건설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유재산 개발자는 저렴한 주택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투쟁의 대상이 아닌 동맹자로 간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정부·여당은 지난해 7월 전세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시행을 전후해 베를린의 월세상한제 실험을 홍보하는 데 앞장선 바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8월 배포한 자료를 통해 "독일·미국 등 해외 주요국은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규제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 다시 강화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강조했다. 특히 "독일은 베를린, 쾰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임대료가 급등하자 주변 시세의 1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초기 임대료 규제제도를 운영 중이고 베를린시는 2020년 1월부터 5년간 임대료를 동결했다"고 상세하게 안내했다.
설익은 제도를 도입한 결과도 독일과 판박이다. 한국 임대차 시장은 임대차법 시행 이후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집주인들이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세입자들은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전세가 귀해지자 '차라리 집을 사자'는 수요가 늘면서 집값 폭등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KB부동산 리브온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되기 직전인 지난해 7월 99.1에 그쳤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반년 만인 지난 1월 114.1로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성급한 정책 실험이 서민의 고통만 가중시켰다고 비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난해 1월 시작된 베를린의 사례는 독일 현지에서도 부작용이 클 것이란 지적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정부가 엉터리 정책을 만들면 서민만 고통받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누군가 책임을 질 때"라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 김덕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