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도에 거주 중인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본가와 처가가 있는 서울 강서구나 양천구 지역으로 전세집을 알아보고 있다. 첫 아이가 생기면서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울 안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 지역 아파트들의 전세가는 자신이 경기도에서 산 2년 동안 2억~3억원 가량 올랐다. 껑충 뛴 전셋값이 부담스러운 A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반전세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2. 3억원 가량의 지방 주택을 처분하고 다시 서울로 복귀하려 하는 40대 직장인 B씨는 요즘 '벼락거지'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자신이 3억원 중반대에 매도했던 아파트가 현재 7억~8억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인근 지역 20평짜리 빌라도 4억원이다. 현재 지방의 주택을 처분해도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2억원 가량이어서 반전세집을 구하고 있다.
전셋값 고공행진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운데 '전세 난민' 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전세 거래가 급감하는 가운데 반전세 거래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집주인 "전세집이 안 나가서 속타요"
5일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월 서울의 전세 거래건수는 총 546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1540건 대비 52.6% 급감했다.
서울의 전세 거래량은 지난해 8월까지 4월(9500건)을 제외하고 매달 1만건이 넘었다. 하지만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지난해 9월 8601건, 10월 9894건, 11월 8050건, 12월 7339건, 올 1월 5468건 등으로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다.
서울 전세 거래의 급감은 전셋값의 지속적인 상승 때문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로 갭투자에 나선 집주인들의 빡빡한 자금 사정 탓에 전세 거래가 줄어도 전셋값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의 전셋값은 이번주에도 0.11% 오르면서 84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세집을 구하고 있는 직장인 C씨는 "서울 가락시장역 인근에서 전세가 12억원의 49평형 집을 보고 왔는데 수리가 전혀 안 돼 12억원 짜리 집이라고 볼 수 없었다"라며 "집주인이 갭투자자인데 전세가 12억원에 맞춰서 자금계획을 짰기 때문에 전세값을 내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셋값 부담에 거래가 줄고 있는 와중에도 전세값 상승이 이어지면서 전세매물이 쌓이고 있다. 아파트 실거래가 애플리케이션 '아실'에서 집계한 전날 기준 서울 전세매물건수는 2만1656건이다. 지난해 1월 5만건에 달했던 서울 전세매물수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된 8월 이후 집주인들이 전세 매물을 대거 거둬들이면서 지난 10월 6일 8642건으로 연중 최저치를 찍었다. 이후 전세매물수가 완만히 상승하면서 지난달 22일 재차 2만건을 넘어섰다. 가락시장역 인근의 부동산 매매업소 관계자는 "요즘 대형평형 투자자들은 전세를 최고액으로 받으려고 하는데. 들어오려는 사람들은 자금 부담이 커서 그 가격을 못 맞추다보니 물건이 쌓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세입자 “전세 너무 올라서 엄두가 안 나요”
전세 세입자들은 반전세 시장으로 밀려나고 있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 통계에서 지난달 준월세(보증금이 월세의 12~240개월치)와 준전세(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 초과)를 합한 반전세 거래량은 2296건으로 전세 대비 44.1%의 비중을 기록했다. 전세 대비 반전세 거래량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30%대에 머물렀다. 지난 7월에는 32.7%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줄곧 40% 이상을 기록 중이다. 전셋값 급등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반전세를 찾는 세입자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올 가을 결혼 예정인 직장인 D씨는 "마포구에서 전세 6억5000만원짜리 매물을 봤는데 예산을 한참 초과하는 가격이지만 역이랑 가깝고 집도 깨끗해 마음에 들었다"라며 "중개인을 통해 보증금 4억에 월세 50만원을 제시했는데 집주인이 반전세로 계약하려면 월세 70만원을 달라고 해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전세를 내놓았던 집주인들도 반전세 전환을 선호하고 있다. 임대차법 개정으로 전세 세입자는 최초 2년 계약, 2년 계약 연장으로 총 4년 동안 거주가 보장되는데 계약 갱신시 보증금 인상은 최대 5%까지만 가능하다. 전세를 놓은 집주인들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진 만큼 안정적인 월세를 받는 게 더 낫다는 인식이 집주인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가락시장역 인근의 한 아파트 단지는 불과 3년 전 5억~6억원이던 32평형의 전세가가 지난해 7월 7억원으로 올랐다. 최근에는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 집주인들이 전세 보증금 3억원, 월세 180만원의
전세 세입자 E씨는 "현재 7억5000만원 짜리 전세가 올 10월 만료되는데 집주인이 전세 5억원, 월세 200만원의 반전세로 바꾸자고 요구하고 있어 고민"이라며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본인이 실거주하겠다면서 내용증명까지 운운하고 있어 괴롭다"고 토로했다.
[고득관 매경닷컴 기자 kd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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