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드디어 20일(현지시간) 낮 12시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바이든 취임을 축하라도 하듯이 뉴욕증시 3대 지수 모두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다우지수는 0.83%, S&P500은 1.39% 올랐구요. 나스닥 지수는 1.97% 급등했습니다. 취임식 날 상승률로 치면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시작일 이후 가장 높다고 하네요. 친환경 정책과 경기 부양 등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대한 뉴욕증시의 기대감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기업은 RH라는 가구회사에요. 가구 회사의 혁신이라? 잘 연상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죠.
'Restoration Hardware' 라는 회사명을 쓰던 이 회사는 1979년 캘리포니아주 코데 마데라에서 빈티지 가구 전문점으로 출발했죠. 사세를 꾸준히 확대해갔지만 2000년 초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회사에요.
↑ 뉴욕 첼시지역에 있는 RH 뉴욕갤러리 내부 모습입니다. 럭셔리 호텔 내부를 연상시키는 이 갤러리는 단순히 가구를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곳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박용범 특파원] |
↑ 단순 가구 판매보다 큐레이션 서비스를 추구하는 RH 철학이 반영된 RH 뉴욕갤러리 내부 모습 [박용범 특파원] |
그런데 이 회사 주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요. 지난해 3월 73달러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최근 5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20일에는 502.28 달러로 거래를 마쳤구요.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주가 목표 560달러로 상향 조정했어요.
↑ RH 주가 그래프 |
먼저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의 소비패턴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1월 초에 전미경제학회(ASSA 2021)에서 발표된 내용 중 참고할 내용이 있어 소개해드려요. 전미경제학회는 미국의 거의 모든 경제학 교수, 박사과정 학생 등 3만 여명이 참석하는 초대형 행사에요. 보통 도시 하나를 다 빌려서 개최하는 초대형 학술행사죠. 올해는 학회 설립 136년 만에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열렸죠. 좋은 점이 하나 있었어요. 예전에 세미나룸 먼발치에서 봐야했던 석학들의 발표자료를 줌으로 공유해주니, 아주 선명하게 자료를 볼 수 있게 됐죠.
제가 들었던 세미나 중 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 발표 자료가 인상적이어서 캡처해둔 슬라이드에요.
↑ 팬데믹 이전이 이미 전체 소비의 3분의1 수준으로 감소한 대면 서비스 비중 [자료=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 |
↑ RH 뉴욕갤러리 내부에 전시돼 있는 침대 모습. 마치 호텔 스위트룸 침실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듭니다. [박용범 특파원] |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2019년 3분기 동안 121만 주(당시 주가로 2억 630만 달러)를 투자해 4대 주주가 됐지요. 평균 매입가는 주당 170달러 정도였으니 버핏은 이미 원금의 2배 이상을 번 셈이죠.
RH의 2020년 1분기~3분기 매출은 20억 3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2.7% 늘어났어요. 실적이 아주 인상적이지 않지만 이렇게 최근들어 기업가치가 계속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RH의 현장을 찾아봤어요.
↑ RH 뉴욕갤러리 외부 모습 [자료=rh.com 동영상 캡처] |
첼시는 철길을 복원한 공원인 '더 하이라인(The High Line)'과 '첼시마켓'으로 유명하고, 구글이 사옥을 마련하면서 맨하튼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곳 중에 하나에요. 원래 이곳은 정육 도매상들이 주로 활동했던 곳이에요. 지금도 이곳을 'Meatpacking District'라고 부르지요.
↑ 재개발되어 정육도매상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지금도 `Meatpacking District`이라고 불리는 첼시 지역 모습 [박용범 특파원] |
주변에 에르메스 등 명품매장이 있구요. 사실 이곳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방치된 슬럼가 수준의 동네였어요. 특히 RH갤러리가 들어선 9번가(9th Ave)는 고가에 기차까지 다니던 곳이었죠.
이곳을 자세히 설명드리는 이유는 RH의 기업 문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죠.
↑ RH 뉴욕갤러리가 들어서기 전 부지 모습. RH는 이 건물을 모두 허물지 않고 기존 건물의 골격은 살려 재탄생시켰어요. [자료=rh.com 동영상 캡처] |
게리 프리드먼 CEO는 "옛날에는 정육도매상들이 아주 좋은 입지로 여겼고, 각종 바와 클럽 등이 있었던 곳이었다"며 "사람들이 그런 곳에 그런 큰 매장을 내는 것은 돈만 낭비라고 반대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죠. 인허가 등 각종 낙관을 극복하는데에만 7년에 걸렸다고 해요. 이런 낙관 끝에 2018년 문을 열었어요.
↑ 인터뷰 중인 게리 프리드먼 RH 회장 겸 CEO. 그는 젊은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로 2012년 잠시 물러났으나 2013년 다시 복귀했어요. [자료=rh.com 동영상 캡처] |
RH는 이런 전시 매장을 '갤러리'라고 불러요.
뉴욕 뿐 아니라 시카고, 보스턴, 할리우드, 그리니치 등에 68개 갤러리를 운영 중이죠. 38개 아울렛 매장은 따로 있구요.
RH 뉴욕갤러리에 들어서자 럭셔리 호텔, 뮤지엄, 박물관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120개의 크리스털 조명이 주는 화려함에 더해 계단, 코너에 배치된 조각상들, 그러면서도 모던한 가구들이 조화를 이루는 차분함이 매우 인상적이더군요.
이곳은 뉴요커들에게 단순한 가구 매장 이상의 공간이죠.
인기 미드였던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 사라 제시카 파커는 베이비 샤워(Baby Shower·출산 전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하는 파티) 장소였죠. 2018년 뉴욕갤러리 오프닝에는 사라포바 등 유명 인사 1500 여명이 몰렸었죠.
RH는 단순히 가구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 집 내부를 '큐레이션'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매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집 내부에 맞춰 어떻게 인테리어를 바꿀 수 있을지 컨설팅을 해주는 것에 고객 만족도가 높다"며 "팬데믹 이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며 집안을 보다 잘 꾸미려는 수요가 확실히 늘어났다"고 말하더군요.
지하 1층을 포함, 6층짜리 이 건물에는 인테리어연구소가 있구요. 옥상에는 야외 테라스가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어요. RH가 선보이는 고급 가구들로 디자인한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곳이죠.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19 사태와 겨울 날씨로 영업을 하지 않고 있어요. 제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찍은 입구 사진만 공유해요.
가구업계에서는 드물게 구독경제 모델로 로열티 높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만 해요.
연간 100달러를 내면, 전 제품을 25% 할인해주는 프로그램인데요. 작은 전등 하나도 500~600달러씩 하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RH 매출의 95%가 회원들로부터 발생한다고 해요.
RH는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잘 찾아가고 있다고 봐요.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나만의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고 봐요. 모든 것이 비대면화되면서 밖으로 향하던 시선이 안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죠. 밖으로, 멀리 여행을 다니던 사람들이 안으로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삶의 발견'을 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RH 뉴욕 갤러리 1층에는 아직도 고집스레 상품 설명 매거진들이 전시돼 있어요. 온라인이 대세가 된 이 시점에 왜 이런 하드카피를 고집할까요?
'Source Book'이라고 불리는 이 매거진은 단순 상품 카달로그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작품 세계라는 철학을 공유하기 위한 매개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팬데믹 이후 소비의 양극화 현상은 익히 알려진 트렌드죠. '유레카 뉴욕' 코너에서 이미 소개해드린 '파페치'(FarFetch)가 대표적이죠. 온라인상 명품 보복 소비로 파페치가 뜬 것 처럼, 고소득층의 소비가 집안 내부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 RH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어요.
단순히 명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보다, 문화·감성을 더해야 소비가 일어난다는 것을 RH는 잘 알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2010년부터 이 회사는 완전히 럭셔리 시장으로 포지셔닝을 바꾸었죠. '이케아'(IKEA)에 싫증이 난 사람들은 한 단계 위 브랜드인 '포터리 반'(Pottery Barn)에 눈을 뜨게 되는데요. RH는 이보다 더 한단계 위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을 써서 비교적 잘 안착한 것으로 보여요.
팬데믹 상황으로 일시 중단됐지만 RH는 럭셔리 게스트하우스 등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 다양한 변신을 준비 중이에요.
프리드먼 CEO는 "내일의 미래를 창조하기
RH가 계속 혁신의 역사를 써 나갈지 지켜볼 일입니다.
[박용범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