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산다면 가장 불편한 점은 무엇일까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의료 서비스를 꼽고 싶네요.
상상을 초월하는 의료비는 워낙 유명하니 거두절미하구요. 아파도 병원에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은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좀 더 심해졌을 뿐입니다.
제가 아는 지인은 CT 촬영 한번이면 발견할 수 있었던 암을, 석달에 걸쳐 기본 검사만 받다가 귀중한 시간을 날린 분도 있었죠. 최상급 병원은 논외로 하고 일반인들이 찾는 병원의 의료장비 수준은 한국보다 나은 곳이 별로 없죠.
일반 개인의원도 예약없이 갈 수 없는 곳이 많구요.
↑ 텔라닥(Teladoc) 이용자가 원격으로 연결된 의사를 통해 진료를 받으며 맥박 등 간단한 건강 체크를 하는 모습입니다. [자료=TeladocHealth.com] |
이런 불편함이 있다면, 당연히 혁신의 틈바구니가 존재하죠.
국내에선 원격의료를 놓고 수십년째 해묵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죠. 미국 최대 원격의료 기업인 텔라닥 성장사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워낙 인상적인 회사라, 본사가 있는 곳을 한번 방문해봤어요.
↑ 텔라닥 본사가 입주한 뉴욕 웨체스터 카운티 퍼쳐스(Purchase)의 더 센터(The Centre) 2번 건물 모습. [웨체스터(뉴욕주)=박용범 특파원] |
이곳 입주사들도 팬데믹 이후에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탓인지, 제가 주중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사람을 볼 수 없었어요.
원격의료 시장은 코로나19 사태로 날개를 단 분야이죠.
↑ 텔라닥(Teladoc) 의료진이 환자와 진료 중 과거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상담에 나선 모습. [자료=TeladocHealth.com] |
3분의 2에 가까운 응답자는 주치의가 있지만 원격진료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췄다고 해요. 이는 원격의료는 24시간 365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어요. 더군다나 팬데믹 이후 병원에 가는 것이 꺼려지는 상황에서 원격의료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죠.
↑ 7000만명에 이르는 미국 텔라닥(Teladoc) 이용자 수. [자료=TeladocHealth.com] |
텔라닥을 이용한 진단은 지난해에 약 1000만 건이 이뤄졌죠. 텔라닥은 남미, 중동, 동남아시아 등 전세계로 대상을 확장 중이에요.
↑ 2020년에 약 1000만 건의 원격진료가 이뤄진 텔라닥 이용 실적. [자료=TeladocHealth.com] |
원격진료를 받을 때 마다 진료비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보통 회사 측이 제공하는 보험으로 커버되지요. AT&T 같은 통신 대기업이 텔라닥 초창기에 기업 회원으로 들어왔죠.
물론 이런 연회비 없이 진료시마다 돈을 내는 방식으로도 이용이 가능해요. 이 경우에 보험이 있으면 보험으로 본임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죠. 이것조차 없다면, 한번 진료시마다 75달러를 내지요. 방문 진료 때 처럼, 의사가 처방전도 발행합니다.
↑ 텔라닥(Teladoc) 소속 의료진이 환자와 원격으로 건강 체크를 하는 모습입니다. [자료=TeladocHealth.com] |
↑ 병원 의료진이 텔라닥(Teladoc) 을 이용해 원격으로 연결된 의사를 통해 시술을 하는 모습입니다. [자료=TeladocHealth.com] |
텔라닥은 최근에 최고 명문 의대를 가진 존스홉킨스대, 유럽 최대 통신사 중에 하나인 텔레포니카 등과 제휴를 하며, 전문성을 넓히고 있습니다.
2002년 설립된 텔라닥은 처음부터 순혈주의를 포기했죠. 원격의료와 관련성이 있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은 계속해서 M&A를 하며 식구로 받아들였어요. 저는 이것이 텔라닥이 원격의료에서 미국 1위를 넘어서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원격의료 서비스 기업이 된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수십 개의 인수 기업 중 대표적인 것이 2017년 4억 4000만 달러를 주고 산 '베스트 닥터스'(Best Doctors), 2020년 8월에 185억 달러에 사들인 '리봉고'(Livongo) 등이 있어요.
↑ 텔라닥은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주로 원격 관리해주는 리봉고(Livongo)를 인수한 이후에 리봉고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 중입니다. [자료=TeladocHealth.com] |
리봉고는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주로 관리해주는 회사인데요.
당뇨병 기업 회원만 1300개 이상입니다. 포춘 500대 기업의 30% 이상이 회원이죠. 좋은 회사일 수록 직원 복지를 위해 이런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 중인 셈이죠.
맥킨지&컴퍼니는 팬데믹 발생 직후, 미국에서 약 2500억 달러의 의료시장이 원격의료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죠. 프로스트&설리번(Frost & Sullivan)은 이 시장이 5년 평균 38% 씩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텔라닥 매출은 이런 전망 이상으로 더 가파르게 늘고 있어요.
2020년 1분기~3분기까지 매출은 7억 1064만 달러를 기록, 전년 동기대비 79% 늘어났구요. 아직 4분기 실적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회사 측은 2020년 매출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2020년 이용자수는 미국 기준, 유료 연회비 회원의 경우 5000만~5100만 명, 방문시마다 진찰비를 내는 회원의 경우 2100~22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했어요.
이 회사에 대해 알아보다가 알게 된 이 회사 임원의 동영상 인터뷰 내용을 소개해요. 텔라닥의 의료시스템 담당 사장인 조 드비보(Joe DeVivo)는 "의료계의 CIO, CMIO, CSO, CDO, 등은 이제 매우 심각하게 환자들을 위한 '디지털 여행'(Digital Journey)을 위한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헬스케어를 '디지털 여행'이라고 표현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너무 당연하지만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 있어요.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한 곳이 헬스케어 분야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 회사가 헬스케어 회사이기 전에 가장 가치가 높은 데이터 중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빅 데이터' 회사라고 봅니다.
각종 스마트 기기의 발달과 분석 기술의 발달로, 예방적인 치료가 가능해졌죠. 이런 데이터를 받아서 합리적인 가격에 생애 주기별로 관리해준다면 누가 지갑을 열지 않을까요?
2015년 7월 뉴욕증시에 상당된 텔라닥은 공모가가 19달러였어요. 이후 꾸준히 오른 주가는 지난해 초 83.26 달러에서 지난해 말 199.96 달러로 거래를 마감했구요. 지난 8일(현지시간) 종가는 227.78 달러를 기록했어요. 시가총액은 상장 당시 6억 2000만 달러에서 330억 달러로 53배 커진 상태에요.
시장분석 커뮤니티인 시킹알파(Seeking Alpha)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32명 중 16명(50%)이 강력 매수, 4명(12.5%)이 매수, 11명(34.4%)이 중립, 1명(3.1%)이 매도 의견을 표시했어요. 이들의 목표 주가는 242.19 달러로 나와있구요.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원격 의료에 대한 장벽을 치워준 혁명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적극적인 개방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에요. 팬데믹 초기에 대구에서 환자가 급증했을 때 많은 의료진이 전화와 원격 상담을 한 적이 있었죠.
의료계에서 원격 의료를 거부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경쟁력이 없는 개인 병원 의사들이 대형 병원에 치일 것이라는 우려였죠. 하지만 대구에서 사태 초기에 오히려 개인 의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성과를 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었어요.
텔라닥이 '굿 닥터스'라는 의사 풀을
이런 점을 잘 참고해서, 한국도 의료서비스 변화의 모멘텀을 잘 살려갔으면 해요. 지금, 분명히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의 파도가 치고 있고, 이 파도를 타지 못하면 더 크게 뒤쳐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박용범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