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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마지막 월요일 아침이 밝았네요:)
코로나19가 모든 상식을 뒤엎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네요.
팬데믹 속 급속한 디지털화는 부동산, 중고차 시장에서 파괴적 혁신을 불러왔습니다. 지난 주에 소개해드린 부동산, 중고차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질로우(Zillow), 카바나(Carvana)가 대표적입니다.
개인의 경제생활 중 가장 비중이 큰 집, 자동차 거래가 디지털화됐다면 무엇이 불가능할까요?
아마존이 손대지 못한 전자상거래 영역은 무엇일까요?
집(질로우), 중고차(카바나)에 이어 명품시장이 그랬습니다.
↑ 글로벌 명품 온라인 유통을 선도하고 있는 파페치(Farfetch) [자료=Farfetch.com] |
언뜻 생각하면 이것만큼은 디지털로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 같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파페치'(Farfetch)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네요.
아마존이 놓친 명품 유통 시장에서 글로벌 1위 온라인 플랫폼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콧대높은 명품 기업들을 점점 본인 입맛대로 큐레이션하면서 이 생태계를 온라인 상에서 잡아가고 있습니다.
파페치- 회사 이름부터가 기이합니다.
far-fetched (믿기지 않는, 설득력 없는, 터무니 없는)라는 영어단어를 연상시키는 이 회사 사명.
명품을 온라인에서 팔겠다는 역발상을 상징하는 사명을 염두에 둔 것일까요?
멀리서(far), 가져오다(fetch)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어 보입니다
딕셔너리닷컴(dictionary.com)에 따르면 이 단어에는 'being only remotely connected' 라는 뜻이 있네요. 13년 전에 탄생한 이 회사가 언택트 시대를 예견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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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알리바바그룹, 스위스 리치몬트그룹과 제휴 소식이 알려진 11월 초부터 급등한 파페치 주가 [자료=구글] |
10월 30일 종가가 28.13달러로, 4월초 저점에 비해서 4배 이상 올랐었죠. 하지만 11월 초부터 수직 상승 랠리가 시작됐고, 지난 24일 종가는 64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저점대비 10배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파페치의 주가에 불을 붙인 것은 7억 5700만명 고객이 있는 중국 최대 온라인몰 알리바바(Alibaba), 스위스 명품그룹 리치몬트(Richemont: 리슈몽)와 합작과 투자 소식입니다. 리치몬트는 익숙하지 않아도 까르띠에(Cartier), IWC, 끌로에, 몽블랑, 바쉐론 콘스탄틴, 피아제 등은 다 들어보셨을 브랜드일 겁니다. 리치몬트는 이를 포함 20여개 브랜드를 거느린 명품 그룹입니다.
↑ 리치몬드그룹 주요 브랜드 [자료=competitionpolicyinternational.com] |
스위스 증시(SWX)에 상장돼 있는 리치몬트 주가는 10월 말 57.50 스위스프랑에서 11월부터 치솟았고 지난 23일 종가는 79.06 스위스프랑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마윈 창업자의 정치적 스캔들이 불거진 알리바바는 뉴욕증시에서 11월 이후 주가가 계속 하락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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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증시에서 11월 이후 상승한 리치몬트 주가. [자료=구글] |
파페치는 알리바바를 위협하는 중국 JD.com(찡둥닷컴)과 이전부터 강한 파트너십이 있었습니다.
JD.com은 2017년 파페치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3억 9700만 달러를 투자했죠. 파페치는 2019년 중국 판매 플랫폼을 흡수했고, 운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알리바바, 리치몬트와 제휴로 이 제휴관계는 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중국 1위 전자상거래 기업과 재혼을 한 셈입니다.
텐센트는 JD.com 지분을 17.1% 갖고 있습니다. 텐센트가 가진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은 JD.com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게다가 JD.com은 월마트도 12% 지분을 갖고 있는 중국의 2위 전자상거래 기업입니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신부이죠.
파페치라는 신랑은 이런 신부를 차버리고 더 큰 집에 새 장가를 간 셈입니다. e마케터(eMarketer)에 따르면 알리바바, JD.com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59%, 17% 입니다.
저는 이런 파트너십 변화가 파페치가 얼마나 힘이 세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 파페치 창업자인 포루투갈 기업인인 호세 네베스(Jose Neves) [자료=호세 베네스 트위터] |
현재도 CEO를 맡고 있죠.
그는 2007년 파페치를 창업했고, 2018년 10월 런던 기반으로 파페치를 론칭했습니다.
그는 "대공황으로 가는 눈사태를 촉발시킨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난 지 2주 뒤에 파페치를 론칭했다"며 "전세계 패션 큐레이터들과 소비자들을 연결시키면서 유통업체들이 2008년, 2009년 혼란의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호세 네베스는 팬데믹 시대 파페치의 부상에 대해 다시 확신했죠.
그는 "2009년 경기침체시에 명품 시장은 8% 위축됐지만, 2010년에는 14% 성장하며, 2008년 수준을 넘어섰다"며 "2020년에 명품 시장이 위축될지라도 3000억 달러 규모 개인 명품시장은 복원력이 강력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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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되지만 다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명품시장 [자료=Farfetch 뱅크오브아메리카 IR자료, 베인&컴퍼니 자료 재인용] |
3000억달러 시장의 3분의 1 이상(2019년 기준 35%)은 중국인 지갑에서 나옵니다. 이 중 70%는 명품 구매를 위한 해외여행 중에 이뤄진다고 합니다. 700억 달러 시장이 중국인들의 해외여행 중에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호세 네베스는 이런 여행을 가지 못하더라도 이 소비욕이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죠.
↑ 파페치 온라인 몰 화면 [자료=Farfetch.com] |
지난해 1000억 달러 규모인 중국의 명품소비는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속속 진입하며 2025년 1700억 달러로 성장(Bain-Altagamma Luxury Goods Worldwide Market Update, 2020년 5월 발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호세 네베스는 "중국 뿐 아니라 중동, 브라질, 러시아에서도 이런 시나리오(해외여행 중 명품구매의 온라인 구매 전환)가 적용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4월 이 같은 예상은 실제로 어느 정도 적중했을까요?
파페치의 3분기 재무재표를 볼까요.
2020년 1분기~3분기 파페치는 11억 3382만 달러 매출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77.5% 성장했습니다. 파페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9.5% 늘었는데요, 아마존은 같은 기간 37% 성장했습니다.
매출은 이렇게 기록적으로 성장 중이지만 아직 흑자를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3억 9489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4.3% 늘어났습니다. 세후 손손실 10억 5204만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4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런 적자 상태에서도 1등 신랑감으로 꼽힌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아마존도 초기에 이런 궤적을 그렸었습니다.
아마존은 1997년 5월 상장 이후 첫 분기 순이익을 내는데 약 7년이 걸렸습니다. 아마존이 누적 적자를 0으로 만드는데는 14년이 걸렸죠. 규모의 경제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죠.
파페치의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파페치의 ▲철저한 국가별 현지화 전략 ▲단일 채널 공급망 탈피가 중요한 성장 배경이라고 봅니다.
파페치는 한국의 명품 직구족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사이트입니다.
한국 전용사이트가 있고, 쇼핑시 관세·부가세 포함된 가격까지 상세하게 '원화'로 안내해주죠. 핫딜이 뜰때마다 관련 카페에서 화제가 됩니다.
첫 페이지 로딩시 뜨는 모델은 백인이 별로 없습니다. 아시안, 흑인 등 다양한 인종 모델이 등장합니다.
파페치는 판매 중인 상품의 85%는 복수의 판매자로부터 조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지역, 다양한 국가에서 최적화된 배송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뜻입니다.
1200개에 달하는 명품 셀러를 입점시켰고, 꾸준히 이용 중인 활성 고객은 250만명(6월 말 기준) 입니다.
시장분석 커뮤니티인 '시킹알파'(Seeking Alpha)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17명 중 8명은 적극 매수(47%), 4명은 매수(23.5%), 4명은 중립(23.5%), 1명은 적극 매도(5.9%)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리테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파페치는 2017년 4월 '파페치 미래
이곳에는 증강현실(AR)을 이용, 럭셔리 브랜드의 맞춤형 제안을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브랜드별로 오프라인 매장 내 체험 정보를 디지털화한다는 전략입니다.
팬데믹이 탄생시킨 또 다른 스타, 파페치가 어떤 성장을 지속할지 주목됩니다.
[박용범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