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관계자는 21일 "우리는 금융당국에 파견 가는 직원을 두고 보통 '사노비'라고 부른다"며 "그만큼 '갑을' 관계에서 갑이 부르면 을은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파견 가는 직원은 금융당국과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을 주로 보내고 다녀오면 인사 평가 등을 통해 고생한 대우를 해주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민간 회사가 금융당국 측 파견 요청에 응하는 이유는 '관계' 때문이다. 한번 당국에 찍히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먹이사슬 같은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로서는 파견 직원이 금융당국에서 장기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민간 회사의 공식적인 창구 역할도 한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이 피감기관인 외부 민간 회사 직원을 파견받으면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하고 심하면 긴밀한 유착 관계로 인해 금감원 감독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회사로서는 당국 측 파견 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지만 직원들은 금융당국 파견직이 딱히 선호하는 자리가 아니다. 경력 관리에 욕심이 있는 직원들은 파견을 기피하는 사례도 많다.
금융당국 측은 금융사와 협조가 필요한 부문에서 금융사 직원을 파견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보험사기 등 불법행위를 감독하기 위해서는 실제 사기 행각이 이뤄지는 금융사 측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 관계자는 "사례 조사, 현장 점검 등 업무를 맡은 파견 직원들은 대부분 금융위 주무관의 보조 역할 정도를 한다"며 "금융당국의 정책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자리는 없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금감원 파견 경험이 있는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기획 업무를 배웠는데 금감원으로 가면서 전혀 엉뚱한 보직으로 인해 내 경력이 망가졌다"며 "처음에 예상했던 기간보다 파견 기간이 더 길어지면서 내 정체성이 은행인지 금감원인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금융사에서 금감원에 파견된 직원은 "내가 간 팀은 명예퇴직을 앞둔 사람들로 짜인 소규모 팀이었고 팀 이름은 혁신을 위하는 것처럼 돼 있는데 평소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며 "처음에는 편해서 좋았는데 일거리가 없으니 우울해졌다"고 전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위와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금감원 정원 1981명 중 3.7%에 해당하는 74명이 외부에서 파견받은 인사였다. 파견자 원래 소속 기관은 은행, 생명보험, 손해보험, 금융투자 등 민간 금융사와 전국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민간 금융협회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기관 중 금감원에 5년 이상 장기 파견을 보낸 곳은 총 34곳으로 전체 파견 기관의 46%에 달했다. 금감원에 10년 이상 초장기 파견을 보낸 기관도 8곳에 달했다. 이 기관들은 삼성생명, 교보생명,
[윤원섭 기자 / 김혜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