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자이앤트 레터(GIANT LETTER)' 출범 이후 보여주신 관심과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칭찬보다는 발전을 위한 지적을 더 환영합니다:)
오늘은 제가 미국에서 집을 구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업을 하나 소개할께요. 질로우(Zillow)라는 부동산 앱 이야기입니다.
↑ 부동산업계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질로우닷컴에 올라온 주택 매물 샘플입니다. 집 사진을 클릭하면 자세한 정보로 연결됩니다. [출처=질로우닷컴] |
당시는 코로나19 사태로 부동산 거래가 거의 마비됐을 시기였죠. 집주인이나, 세입자들은 집을 보여주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하지만 질로우는 신세계였습니다. 매물 주소만 알면, 대부분 주택 내부 사진은 물론 적정 가격, 매매/임대 거래 내역, 적정 매매가, 적정 임대료, 모기지 상환 추정액, 매물 담당 부동산 브로커(listing agency), 인근 공립학교 초중고 평점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죠.
↑ 질로우 매물 소개란에 붙어 있는 학군 정보. 자녀가 있는 학부모라면 가장 편리한 정보입니다. [출처=질로우닷컴] |
일단 이렇게 훑어보고 나면, 직접 보지 않아도 해당 집에 대한 그림이 눈에 그려집니다.
미국에서는 집으로 손님을 초대할 경우가 많은데요.
질로우로 한번 집 내부를 보고 가는 것이 암묵지가 되기도 합니다.
대문, 주차장 위치 등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 집 내부 사진까지 보여주는 질로우닷컴 매물 정보 [출처=질로우닷컴] |
그래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구글에 집주소만 치면, 거의 첫 화면에 질로우의 해당 집 소개 링크로 연결되니까요.
집을 구하려는 마을, 희망 가격대 등을 설정해두면 수시로 이메일로 추천 매물들이 올라옵니다.
질로우에서 개략적인 정보를 확인한 뒤 구글맵의 스트리트 뷰(Street View), 구글 어스(Google Earth) 의 위성사진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면, 브로커에게 연락을 해볼 만한 곳인지 감이 잡힙니다.
저도 이렇게 해서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계약을 마쳤습니다.
↑ 질로우닷컴에서 지역을 설정해서 검색하면 이렇게 지도 위에 매물리스트가 표시됩니다. [출처=질로우닷컴] |
미국에서 집을 구할 때 질로우는 한번쯤은 꼭 보게 됩니다.
미국의 전체 주택 수는 1억 3964만 채(2019년 기준)입니다.
질로우는 이 중 96.7%에 해당하는 약 1억 3500만 채의 주택정보를 갖고 있죠.
거의 미국의 모든 주택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질로우는 단순 매물 정보뿐 아니라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리모델링 등 다양한 서비스로 관련 생태계를 장악해 나가고 있죠.
제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코로나19 사태는 달려가던 질로우에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팬데믹 시대 직접 매물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자 시장은 더더욱 질로우에 더 의존하게 됐죠.
↑ 질로우그룹 계열사 현황. 질로우그룹은 2015년 2월 최대 경쟁자였던 트룰리아(Trulia)를 35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출처=질로우닷컴] |
같은 기간 순손실은 2억 415만 달러에서 2억 815만 달러로 소폭 늘어났습니다.
아직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3분기(7월~9월)에는 3957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저는 이 회사를 단순한 부동산 관련 서비스 기업이라기보다 넷플릭스처럼 컨텐츠 서비스 기업이라고 봅니다.
일종의 미디어 회사인 셈이죠.
부동산 서비스 기업이지만 주택 부분 매출 비중은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주택 부문 매출 비중(2020년 1월~9월)이 55% 인데 비해, IMT(Internet Media and Technology) 분야 매출 비중이 40%를 기록했습니다.
3분기에는 미국 전역에서 부동산 매물 부족 현상이 빚어지며, 주택부문 매출이 감소했고, IMT 매출이 부동산 매출의 2.2배로 커졌습니다.
잠재 고객을 발굴하려는 중개인들이 내는 광고료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뉴욕지역의 한 부동산중개인은 "질로우는 너무 높은 광고료를 책정해, 렌트 거래 중개의 경우 거래가 성사되어도 질로우에 주는 광고료가 커서 남는 게 없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 질로우 현황 [출처=질로우닷컴] |
하루에 약 3000만 명이 방문했다는 뜻입니다. 질로우닷컴을 자주 방문하는 질로우 스크롤러(Zillow Scroller)라는 용어가 쓰일 정도네요.
미국인 10명 중에 1명은 매일 질로우닷컴을 접하는 셈입니다.
프롭테크(PropTech: Property+Technology, IT를 활용한 부동산 서비스산업)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질로우는 IMT 분야에 회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프롭테크 분야를 이끌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가 필수적이죠.
미국 전체 주택의 96.7%에 대한 정보는 직접 취득한 정보가 아니라 간접 취득한 정보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각 지역마다 MLS(Multiple Listing Service)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 특화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들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약 500개 이상의 MLS가 있죠.
예를 들어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의 경우 지역 내 가장 정보가 많은 NJ MLS로부터 1차 정보를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별로 존재하던 정보를 전국적으로 통합, 주택 정보 시장에서 '연방국가'를 건설한 셈이죠.
↑ 질로우닷컴의 강점인 자체 감정가격 서비스인 `제스티메이트`(Zestimate) 샘플입니다. 샘플을 보시면 매매, 렌트에 대한 감정가가 나와있고, 지난 30일간 가격 변동, 과거 `제스티메이트` 히스토리가 나옵니다. [출처=질로우닷컴] |
바로 '제스티메이트'(Zestimate)라는 일종의 주택감정시스템입니다.
아파트 비중이 월등히 높은 한국과 달리 미국은 개인주택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렇다보니 부동산 가격 산정이 매우 어렵습니다.
'케바케(Case by Case)'로 개별적인 산정이 불가피합니다.
질로우는 이런 시장에 방대한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스티메이트'라는 지표를 도입했습니다.
제스티메이트는 주택별로 적정 매매가, 렌트비를 산정해주며 시계열로 시기별 변화 추세 데이터까지 제공합니다.
질로우그룹 주식은 A주(ZG), C주(Z)가 각각 나스닥에 상장돼 있습니다.
C주는 의결권이 없는 주식입니다.
↑ 질로우 A주(ZG) 주가 그래프 [출처=질로우닷컴] |
연초 45달러였던 A주는 3월에 20달러 초반까지 하락했다가 상승하며, 지난 18일 종가는 140.15달러를 기록했습니다.
C주 역시 연초 45달러였고, 3월에 20달러 중반까지 하락했다가 지난 18일 135.20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시장분석 커뮤니티인 시킹알파(SeekingAlpha)에 따르면 A 주에 대해 월가 애널리스트 24명 중에 8명이 적극매수, 4명이 매수, 9명이 중립의견을 표시했습니다. 매도의견은 3명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질로우를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른바 '조이스크롤링'(joyscrolling)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단어는 코로나 시대에 우울한 뉴스만 계속해서 확인하는 '둠스크롤링'(doomscrolling)의 반대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특별히 집을 사거나 렌트할 일이 없어도 질로우닷컴을 보면서 만족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뜻이죠.
가상의 여행을 떠난다고 할까요.
또 다른 삶은 꿈꾸며 계속해서 질로우닷컴 근처를 떠나지 못하는 '질로우 스크롤러'가 늘어나는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듯 합니다.
이는 에어비앤비(Airbnb) 가 코로나 직후 80%까지 예약이 줄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모바일 폰에서 특별한 목적지, 시기도 없이 에어비앤비 앱을 켜고 눈요기를 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정에 없던 여행을 떠나기도 하구요.
팬데믹 이후 억눌렸던 삶 속에서 새로운 심리적 힐링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질로우,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 위에 사는 '조이스
이사를 염두에 두고 질로우에서 조이스크롤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이스크롤링을 하다가 이사를 하는 케이스가 많아질 것 같네요.
질로우의 향후 주가는 조이스크롤러가 얼마나 빈번하게 활동하느냐에 좌우될 것 같습니다.
[박용범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