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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런 전 의장은 연준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워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과 재무부 양쪽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인사로 평가된다. 옐런은 2015년 연준이 출구전략을 실행할 때 유연한 방식으로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연준 출신 재무장관이 있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78년 17개월가량 연준 의장을 역임했던 윌리엄 밀러를 재무장관에 기용했다. 하지만 위원들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한 그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렸던 아서 번스 전임 연준 의장과 함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한 원흉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통화량을 증가시켜 내수 경기를 촉진하고 달러 약세에 따른 수출 경쟁력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역대 연준 의장 중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준이 통화정책 주도권을 확보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35년 매리너 에클스 전 의장은 대통령이 연준위원을 2년에 1명만 선임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재임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위원은 12명 중 4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지역 연준의 협의기구에서 연방준비제도의 법정기구로 격상하고, 회의에 참관했던 재무장관을 배제시킨 것도 에클스의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재무부는 금리 결정권을 흡수하고 연준을 하나의 소속 부서로 취급해 1942년부터 1951년까지 약 9년간 금리를 통제했다. 전후 계속된 금리 통제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연준이 재무부에서 독립을 선포한 것이 1951년 재무부·연준 협약(Treasury-Fed Accord)이다. 이후 번스와 밀러에 의해 잠시 정부에 종속됐던 1970년대를 제외한다면 연준은 끊임없이 정부의 압력과 싸워 가며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옐런은 이러한 연준의 독립성 의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바이든 정부의 오른팔로서 확대 재정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소통과 행정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옐런 전 의장은 과거 '고압경제(High Pressure Economy)'란 개념을 제시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성공적으로 해낸 바 있다. 금융위기로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한 상태에서는 고용과 인플레이션이 목
[신환종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