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서울에 집을 사느라 주택담보대출 6억원(연 금리 2.7%·30년 원리금 균등분할상환 방식), 신용대출 1억원(금리 3%)을 받아놨다. 규제 전에는 연 소득(9000만원)의 1.5배인 1억3500만원까지 대출 한도가 책정돼 추가로 35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하면서 A씨처럼 연 소득 8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의 신용대출 총액이 1억원을 넘기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비은행권 60%)를 적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DSR는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A씨는 이 기준에 따르면 이미 DSR가 47%이므로 신용대출을 더 받을 수 없다.
반면 A씨와 똑같은 주담대·신용대출 조건에 연 소득이 8000만원인 B씨는 DSR 규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기존 신용대출이 1억원이더라도 연 소득의 1.5배가 1억2000만원이기 때문에 2000만원의 대출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신용대출은 통상 연 소득에 비례하는 게 정상이지만 8000만원이라는 특정 소득 기준으로 DSR 규제를 적용하면서 소득이 낮은 사람의 신용 대출 한도가 더 많은 '역전 현상'이 비일비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13일 DSR 규제를 연봉 8000만원이 넘고 1억원 이상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에게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출 규제안을 내놨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 불안을 잡겠다고 비상식적인 대출 규제를 남발하다 보니 금융 생태계에 역행하는 사례가 빈번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규제가 발표된 뒤 첫 영업일인 16일에는 주요 시중은행 대출 창구 직원들에게 이 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문의 전화가 이어졌다. 비대면 활성화로 지점 자체가 붐비진 않았지만 갑작스레 나온 대출 규제에 당황한 고객이 많았다고 은행 직원들은 전했다.
한 은행 창구 직원은 "신용대출에 대한 은행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됐으니 앞으로 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대출 창구 직원은 "이미 은행들이 자체 대출 관리 차원에서 대출 한도를 줄였는데 이번 대책으로 더 줄면 어떡하냐며 항의하는 고객도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일부 고객은 신용대출 사후 관리 방안에 대해 "진짜로 대출이 회수되느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규제에는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이 1년 안에 투기·투기과열·조정대상지역에서 집을 사면 곧바로 대출을 갚으라는 강제 규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부 대책을 우회할 수 있는 통로가 존재해 규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남편이 1억원 이상 신용대출을 받은 뒤 아내 명의로 주택을 구매하면 대출 회수가 이뤄지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차주(돈 빌린 사람) 단위로 일일이 체크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남편과 아내가 모두 9000만원까지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에도 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이후 주택 구매도 가능하다.
이처럼 대출 규제에 대한 문의나 불만이 쏟아지자 금융위는 이날 설명 자료를 내면서 "무주택자의 경우 9억원 이하 주택을 구입
금융위 측 설명과 달리 주담대 상품은 계속 줄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날부터 모기지신용보험(MCI)과 모기지신용보증(MCG) 대출을 중단했다.
[문일호 기자 / 김유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