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REPORT :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
문제는 현실화율을 높일 경우 주택 가격이 전혀 뛰지 않았는데도 '세금 폭탄'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뿐만 아니라 각종 부담금 등 60여 개 행정 항목에 활용되는 지표여서 상당한 여파가 예상된다.
◆ 모든 주택 공시가격 상향 타깃
정부 관계부처에 따르면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에 근접하게 끌어올리는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의 '현실화율 로드맵'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달 초에 근거 법령인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시행령까지 개정·시행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달 말에 (로드맵을)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일정이 밀릴 순 있지만 다음달 안에는 작업을 마치려고 한다"고 밝혔다.
로드맵에는 토지, 단독주택, 아파트 등 부동산 유형별 공시가격 현실화 목표치와 달성 기간 등이 담긴다.
올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의 주택 재산세는 작년보다 20.7% 늘었다. 2008년(28.6%) 이후 12년 만에 가장 큰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재산세 폭탄'은 주로 시세가 9억원 넘는 주택의 보유자에게 떨어졌다. 아파트값이 뛴 것도 이유지만 정부가 9억원 넘는 주택을 대상으로 공시가격을 대폭 높이는 정책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공동주택 기준 시세 구간별 현실화율 목표치는 9억원 미만이 평균 68%, 9억~15억원 미만은 70%, 15억~30억원 미만은 75%, 30억원 이상은 80%였다.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포레(170㎡)는 작년 말 기준 시세가 33억5000만원으로 1년 전과 같았음에도 공시가 현실화율이 67%에서 79%로 올라가면서 보유세가 1508만원에서 2201만원으로 50% 가까이 증가했다.
정부는 내년부터는 9억원 미만 주택에까지 공시가 현실화 정책을 예외 없이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토지와 단독주택, 아파트 등 부동산 유형도 가리지 않고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의 사정권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실화율이 낮았던 토지와 단독주택, 세금 부담 능력이 떨어지는 중저가 아파트 보유자 등에겐 공시가격이 급등할 경우 충격이 심할 수 있어 일종의 유예기간을 줬던 건데 보유세 정상화를 위해선 이 같은 예외를 지속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올해 초 기준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53.6%, 표준지(땅)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65.5%다.
◆ 현실화율 시세 90% 수준까지 상향 가능성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하는 현실화율 목표치는 어느 수준일까. 전문가들은 2018년 7월 공개된 국토교통 분야 관행혁신위원회의 '2차 권고안'을 주목하고 있다. 국토교통 행정 분야 민간 전문가 10명과 국토부 공무원 4명 등 14명으로 구성됐던 이 위원회는 재작년 3월부터 11월까지 활동하며 세 차례에 걸쳐 국토부 정책에 대한 권고안을 내놨다. 공시가격에 대한 부분은 2차 권고안에 집중적으로 포함돼 있다.
당시 김남근 위원장(변호사)은 "공시가격은 보유세의 과표와 각종 부담금을 산정하는 기준 등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시세를 반영한 정확한 가격을 책정해야 하지만 현실화율이 많이 낮다"며 "장기적으로 90% 이상까지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김 위원장은 "숫자를 확정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기 때문에 보고서엔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관행혁신위 2차 권고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당시 보고서에 포함됐던 제안이 실제 정책에 반영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 명단 공개 △조사자들이 공시가격 제출 전 감정원 혹은 평가법인에 제출 의무화 △부실 조사자 벌점 등 제재 강화 등 권고안에 담긴 다른 내용이 대부분 정책으로 현실화됐다. 세종시에서 시범적으로 운영 중인 시세 분석 보고서도 관행혁신위 제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 같은 이유에서 결국 올해 가장 높은 목표치로 제시된 '80%'와 관행혁신위 권고안의 '90%' 사이에서 궁극적인 현실화율 목표가 설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100%'까지는 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공시가격은 매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책정되는데 이후에도 주택 가격이 외부 요인으로 변동폭이 생길 수 있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시세 안 올라도 보유세 상한선까지 급등
이 같은 방안이 현실이 되면 주택 시세가 오르지 않아도 세금 부담이 커진다. 심할 경우 가격이 떨어졌는데 세금이 오를 수도 있다. 국토부는 올해 초 공시가격을 발표하면서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집값이 떨어지면 하락분이 내년 공시가격에 반영되느냐'는 질문에 "내년 현실화율 목표를 어느 수준으로 가져갈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시세 하락을 반영해 내년 공시가격이 내려갈 거라고 예단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매일경제신문사가 우병탁 신한은행 팀장에게 공시가격 현실화율 변화에 따른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시뮬레이션을 의뢰한 결과, 세 부담 상한선 근처까지 폭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올해 초 기준 △시세 5억원 △시세 10억원 △시세 15억원 △시세 20억원 △시세 30억원으로 구간을 나눴는데 가격이 하나도 오르지 않아도 세금 부담이 급증했다.
예를 들어 시세가 15억원 수준인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의 경우 올해 현실화율은 72%로 공시가격이 10억7700만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시세를 고정한 상태에서 현실화율을 80%로 올리면 324만9000원이던 보유세가 446만7000원으로 37.49% 뛴다. 현실화율이 90%까지 상승하면 보유세는 465만1000원으로 더 오른다.
시세가 더 비싼 주택일수록 현실화율 조정에 따른 영향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잠실리센츠 전용 84㎡(올해 초 시세 20억원)는 2020년 공시가격이 14억4600만원(현실화율 72%)이었다. 역시 가격을 고정시키고 현실화율을 80%로 올리면 542만1000원이던 보유세가 768만원으로 41.7% 급등했다.
가격이 낮아도 현실화율이 조정되면 영향력은 상당했다. 성북구 돈암동 풍림아파트 전용 84㎡(올해 초 시세 5억원)의 올해 현실화율은 64%로 공시가격이 3억1900만원으로 책정됐다. 이를 80%로 높이면 55만7000원이던 보유세가 61만3000원까지 10% 올라 세금 부담 상한을 단번에 넘어버렸다. 이럴 경우 2021년에 아파트 공시가격이 떨어져도 전년에 올리지 못한 세금이 이월돼 보유세가 계속 오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현재 공시가격 3억원 이하는 전년보다 재산세가 5% 이상 오를 수 없게 돼 있다. 3억~6억원 이하는 10%, 6억원 초과는 3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