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대차 3법 시행 이후로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매물 정보가 급감한 가운데 서울 강남구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한 시민이 매물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매경DB]
A씨는 전세가뭄을 뚫고 최근 서울의 한 신축 아파트 전세계약을 마쳤지만 여전히 매일 퇴근 후 공인중개사무소를 다니며 집을 구하고 있다. 급한 마음에 집도 안 보고 계약했는데 더 좋은 조건의 집이 나올까 싶어서다. 통상 전세계약을 파기하면 계약금의 두 배를 배상해야 하지만 요즘 전세시장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전세매물을 먼저 잡아두고 더 좋은 조건의 집이 나오면 계약을 갈아타는 게 유행이다. 전세가뭄이 심해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계약기간이 6개월 이상 남은 사람들도 전세시장에 합류하면서 '매물부터 잡고 보자'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같은 조건이나 더 좋은 조건의 세입자를 구해주면 임대인에게 계약금의 두 배를 배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 리가 없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1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갈수록 심해지는 전세난에 전셋집 구하기가 천태만상이다. 전세계약을 해놓고도 다시 집을 구해 '전세계약 갈아타기'를 하는가 하면, 집주인이 매수자에게 집을 파는 동시에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전세를 살게 해달라고 계약조건을 거는 이른바 '세일즈 앤드 리스백'(부동산 매각 후 재임차)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10분에 5만원'을 내걸기도 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졸속 시행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계약 당사자들이 알아서 분쟁을 통해 해결하도록 해놓으니 곳곳에서 눈치작전과 분쟁 직전까지 가는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임차인과 임대인 간 '위로금'을 주고받는 신풍속도 점점 예측 불가능하게 변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안 쓰는 대가로 수천만 원의 위로금을 요구하는 세입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이제는 위로금을 받고도 마음이 바뀌었다며 계속 거주를 요구하거나 추가 위로금을 달라고 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전국 임대차3법 소급적용 피해 집주인 모임'의 한 임대인은 "임차인이 2500만원을 위로비로 요구했다"며 "산정 내역을 보니 1500만원은 2년간 오른 월세, 이사비 200만원, 위로금 50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으로 인한 혼란은 여론조사 결과에 그대로 나타났다. 16일 리얼미터가 전국 5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임대차보호법 찬반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다시 개정해야 한다(재개정)'는 응답자 비율은 48.1%에 달했다. '한번 개정한 내용을 유지하고 효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현행 유지)'는 주장에 공감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38.3%였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 비율은 13.6%였다. 전세난이 특히 심각한 서울에서는 반대 여론이 더 강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응답자 10명 중 5.5명은 재개정에 공감했다. '현행 유지' 응답자의 비율은 28.1%에 그쳤다.
이렇게 세입자와 갈등이 심각해지다 보니 임대인들끼리 '내용증명 사례집'을 공유하거나 아예 변호사에게 의지하는 사례도 늘었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변호사는 "법정에서는 세입자 의사를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상황마다 달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급한 사람이 비용을 더 부담하는 형국"이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의 경우 전세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당분간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주택 공급이 늘고 당장 입주 물량이 늘어나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그중 하나로 160만7000가구의 등록임대주택이 일반에 매각될 수 있도록 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한울 기자 / 김태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