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은행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디지털 뱅킹의 핵심기술로 인식하고 있지만 무역금융과 같은 활용도가 높은 곳에서는 정작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금융에 블록체인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크게 따르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여러 은행들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혹은 정부 주도 플랫폼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런 여건이 국내에서는 아직 미흡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 조사에 따르면 주요 금융회사의 38%는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는 분야로 '무역금융'을 꼽기도 했다.
7일 국제상공회의소(ICC) 분석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반 무역금융은 기존 서류 방식보다 35% 가량 저렴하다. 은행 입장에서도 신용장 위조 등에 따른 리스크가 줄고 무역금융을 활용하는 업체들이 증가함으로써 새로운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예대마진 의존도가 높아 이런 수익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국내은행들의 사정을 볼 때 블록체인 기반의 무역금융에 눈독을 들일만 한다.
수수료 수입 규모와 기업금융과의 연계 등을 고려할 때 무역금융은 은행에 중요한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 무역금융 관련 수수료 수익이 와화수수료 수익의 30% 가량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무역금융 이용 기업을 대상으로 지급결제, 외환·리스크와 자금관리, 신탁 등으로 사업 확대도 도모할 수 있어서다.
이런 점을 잘 간파하고 있는 국내은행들도 시도는 하고 있지만, 아직 결실은 맺지 못하고 있다.
앞서 2017년 하나은행은 '해운물류 블록체인 컨소시엄'에 참여해 오픈 어카운트 방식의 수출대금채권 매입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을 위한 시범 작업을 완료했으나, 실제 무역거래에는 활용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방식은 수출자가 선적 직후 수출채권을 거래은행에 매각하고 거래은행은 만기에 수출업자로부터 대금을 송금받는 대금결제 방식으로, 과정이 간결해 기업들이 선호한다. 이 컨소시엄은 삼성SDS가 주관하고 총 38개 민·관·연이 참여한 공동 프로젝트로, 컨소시엄 소속 국내은행 중 하나은행만 시범 단계까지 검증을 마쳤다.
우리은행은 올해 5월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무역금융 실행 서비스'를 출시했으나, 무역금융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 사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신한은행은 리플의 해외송금 플랫폼 '엑스커런트(xCurrent)'를 무역금융에 활용하기 위해 기술 검증 관련 파일럿 테스트까지 마쳤으나, 비용과 수익성 문제로 상용화하지 못했다. 신한은행은 해외 플랫폼 이용보다는 자체 '블록체인 랩(Lab)'을 통해 해외송금과 무역금융, 거래 인증 등에 점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무역금융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투명성과 편의성 등의 장점을 고려할 때 지속적인 성장을 내다보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관련 컨소시엄이 활성화하고 있다. 위트레이드(we.trade: 중소기업 위주) , 마르코 폴로((Marco Polo: 대기업 중심), 이트레이드커넥트(eTradeConnect: 홍콩 금융청 주도) 등이 그것이다.
황나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미래금융연구실 수석연구원은 "국내은행들도 블록체인 기반의 무역금융이 보편화될 경우에 대비해 컨소시엄에 적극 참여를 고려하는 등 대비가 필요하다"며 "특히 우리나라와 무역 규모가 큰 미국, 중국과 아시아 지역 기반의 컨소시엄 가입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해 황 수석연구원은 주요 무역금융 컨소시엄 중 신용장 디지털화에 초점을 맞춘 콘투어(Contour)를 사례로 언급했다. 콘투어는 HSBC가 주도하는 무역금융 컨소시엄이다. 서류 디지털화를 통해 신용장 방식의 무역거래의 편의성을 제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통상 5~10일 정도 소요되는 신용장 개설과 교환 과정을 24시간 이내 처리한다. 현재 ING, BNP파리파, 방콩은행 등 50개가 넘는 은행과 업체가 합류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세청 주도의 무역금융 플랫폼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에서는 '관'이 나서 무역금융 컨소시엄을 주도하는 성공 사례가 확인된다.이트레이드커넥트는 홍콩 금융청이 설립한 컨소시엄으로 다른
[전종헌 기자 cap@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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