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기관으로 분류되는 수급 주체들은 모두 한국 증시에 대해 '팔자'로 일관했다. 금융투자가 약 2조원, 투자신탁이 1조4000억원, 사모펀드가 1조2000억원, 연기금이 1조1000억원어치를 매도했다. 기관 매도분을 모두 합하면 약 6조2000억원에 달한다. 외국인이 이달 매도한 금액인 1조원을 큰 폭으로 웃도는 규모다.
가장 많은 금액을 매도한 주체는 금융투자다. 금융투자로 집계되는 거래는 증권사들의 차익 거래 비중이 상당분을 차지한다. 차익 거래란 주식 현물과 선물을 반대 방향으로 매매하는 것으로, 둘 중 고평가된 자산을 팔고 저평가된 것을 사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매도가 금지되면서 국내 증시에서 현물은 고평가된 한편 선물은 저평가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증권사들이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현물 매도, 선물 매수 차익 거래에 나서면서 현물 매도세가 급증했다. 공매도 금지가 내년 3월까지 지속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공모펀드로 대표되는 투자신탁은 1조4000억원가량의 매물을 쏟아냈다. 사모펀드도 비슷한 규모인 1조2000억원어치 주식을 매도했다. 이는 최근 공·사모펀드 투자자들의 주식형 펀드 환매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펀드에 들어오는 돈이 빠져나가면 자산운용사들로서는 펀드가 보유한 주식을 팔아 환매 대금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새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약 1조8000억원이 빠져나갔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간접투자상품보다 직접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를 고려하면 위탁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기관이 과거처럼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바라봤다.
연기금의 매도세는 국민연금이 담을 수 있는 주식 비중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이 연간 목표치를 넘기면서 주식 비중을 덜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은 132조원으로 전체 자산(752조2000억원)의 17.5%를 차지한다. 이는 국민연금이 올해 목표치로 제시한 국내 주식 비중 17.3%를 0.2%포인트 넘긴 수치다.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 17.3%를 맞추기 위해서는 약 1조5000억원어치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7월 이후 국민연금이 보유한 다른 자산의 운용 성과를 감안하면 실제 매도 규모는 훨씬 커질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7월 이후 국내 주식이 상승(약 8%)한 한편 해외 채권 가격이 하락(채권금리 상승)한 점을 주목한다. 국민연금이 포함된 연기금이 7월부터 이달 24일까지 매도한 국내 주식 규모는 3조8435억원이지만, 추가 매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일각에서는 배당이 변수가 될 것으로 바라본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배당 수익을 노린 기관발 현물 매수가 유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당 지급 시기인 12월을 앞두고 배당을 주지 않는 선물 대신 현물을 매수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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