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건축에 민간이 참여할지 의문이다. (아파트 최고) 높이에 대한 부분은 현재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서울플랜)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일반 주거나 준주거나 모두 순수 주거용 아파트만 지으면 35층(까지만)이다. 다만 준주거지역에서 지을 때는 비주거를 포함한 복합건축물인 경우에만 중심지 위계에 따라 40층 이상으로 지을 수 있다."(이정화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4일 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논의한 결과를 발표했으나, 이날 오후 서울시가 별도 브리핑을 통해 정면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해 대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13만2000가구 공급안 관련 발표 당일부터 정부와 지자체 간 엇박자가 난 것이다. 서울시는 애초 정부의 발표 현장에 불참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이날 오후 서울시청에서 연 브리핑에서 "공공재건축은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느냐라는 실무적인 퀘스천(의문)이 있다"며 "애초 서울시는 별로 찬성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정부가 8.4 공급대책의 핵심은 공공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수도권 주택 13만2000가구 공급인데, 중요 정책파트너인 서울시가 반대 목소리를 내자 시장에서 확보될 수 있는 물량일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단기간에 마련한 공급대책, 시장 예상 뛰어넘는 13만여 가구 발표
이번 공급 대책은 지난달 2일 문재인 대통령이 급하게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주택 공급을 늘릴 것을 주문한 지 한달여만에 나온 것이다. 시장에서는 두 자릿수(10만가구)를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었지만 정부는 이날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는 13만2000가구를 제시했다.
정부는 이날 대책에서 공공이 사업에 참여하는 공공재건축 사업에 대한 파격적인 용적률·층수 규제 완화카드를 제시했다. 공공재건축으로 사업을 진행할 경우 용적률을 준주거지역 최고 수준인 500%까지 보장하고 층수도 50층까지 올릴 수 있게 한 내용이 골자다. 강남구 압구정동과 송파구 잠실 등 한강변 중층 재건축 단지를 노린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 대책 발표 서너시간 만에 판이 뒤집혔다. 서울시가 별도 브리핑을 열고 35층 층수제한 완화 방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는 동시에 "공공재건축에 민간이 참여할지 의문"이라며 정책 효과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재건축 조합이 조합원들의 뜻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시행에 참여하면 안그래도 다양한 의견으로 추진이 쉽지않은 사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수익 대부분 환수하는 '공공재건축' 참여 조합 얼마나 될지 관건
"재건축 사업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밀개발로 인해 증가한 용적률의 50~70%를 기부채납토록 하여 용적률 증가에 따른 기대수익률 기준으로 90% 이상을 환수하겠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게다가 공공재건축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으면 추가로 확보한 주택의 절반 이상을 기부채납해야 한다. 더 높게, 더 많이 지을 수 있지만 기대 수익을 정부가 대부분 가져가겠다고 공언해 공공재건축을 고려할 현장이 얼마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정부가 공공재건축을 통해 향후 5년간 5만가구를 확보하겠다고 밝힌 목표치에도 물음표가 이어졌다. 5만가구는 정부의 주택 공급 목표치의 38%에 달하는 데 아직 구체화하지 못한 수치다. 때문에 이날 브리핑 후 관련 질의가 여러번 나오기도 했다.
정부는 5만가구의 근거에 대해 서울에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사업시행 인가를 받지 못한 사업장 93개, 약 26만가구를 대상으로 약 20%가 공공재건축에 참여하는 경우를 가정해 5만가구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26만가구의 20%인 5만2000가구가 재건축에 참여해 용적률을 250%에서 500%로 두배가량 받으면 5만여가구를 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참여하는 재건축 조합이 20%라는 것은 아직은 정부의 추산이고, 이때 부여되는 용적률 수준도 정부가 제시한 최대치다.
이와 함께 과거 뉴타운 사업이 좌초된 지역에 공공재개발 사업을 벌여 주택을 2만가구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뉴타운 등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가 사업 지연 등으로 해제된 곳은 서울에 176곳이다. 이 중 145곳(82%)이 노원과 도봉, 강북 등 강북 지역에 있다.
앞서 정부는 이미 5.6 공급대책으로 LH 등 공공이 참여하는 조건으로 재개발 사업의 사업성을 보장해주는 공공 재개발 방안을 제시, 이를 통해 2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재개발 단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앞서 제시한 공공재개발 방식에 대한 재개발 조합의 반응이 확실치 않은데, 사업 대상을 사업 추진이 더 어려운 재개발 좌초 지역으로 확대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나마 실체가 잡히는 공급 물량은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등 신규 택지 발굴을 통해 공급하는 3만3000가구와 3기 신도시 등 기존 택지 용적률 상한 등을 통해 추가 확보하는 2만4000가구 등 5만7000가구 가량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을 높여 고밀개발하겠다는 것이지만 개발이익의 최대 90%까지 환수한다면 조합원이나 소유자들이 할지 의문"이라며 "이번 공급대책이 시장에 영향을 주겠지만 발표한 대로 100% 공급량을 채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 강경입장 밝혔던 서울시, 이날 늦은 오후에 추가 입장자료 내
다만 이날 이른 오후 서울시가 브리핑을 통해 밝힌 입장 관련, 공급대책의 가능성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서울시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날 늦은 오후 서울시는 브리핑에서 강하게 밝힌 입장을 약간 우회한 내용을 발표했다.
서울시 측은 “정부는 서울시와 함께 ‘주택공급 확대 T/F’를 구성해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다”며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에 대해서도 서울시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발표했으며, 서울시도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추가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을 추진하더라도 3종 일반주거지역은 35층, 준주거 지역은 50층까지 제한하는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은 그대로 유지된다.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은 용적률을 3종 일반주거지역에서도 300~500% 수준으로 대폭 완화되는 방식으로 추진되므로 종상향을 수반하는 경우가 다수 있을
서울시 관계자는 “다만 층수 제한을 50층까지 완화하는 것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단지 및 기반시설 등의 여건을 고려해 정비계획 수립권자인 서울시에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마무리했다.
[이미연 기자 enero20@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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