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중대표소송제 리스크 ◆
![]() |
29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국내 다른 법인에 출자한 상장사 1574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평균 7개사에 출자했다. 대기업은 12.5개사에 출자했고, 중견기업(6.4개사)과 중소기업(3.8개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기업은 그만큼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무분별한 출자로 모회사 기업가치를 떨어뜨려 주주들에게 손해를 쉽게 입힌다고 주장한다. 특히 오너 경영자가 자회사를 통해 사익을 편취해도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면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재계는 당초 취지와 달리 다중대표소송제는 헤지펀드나 외국 경쟁사에 공격을 열어주는 부작용이 더욱 크다고 비판한다. 이는 엘리엇 펀드 사례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급작스레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주주제안을 내놨다. 당시 엘리엇이 요구한 배당금은 두 회사 합쳐서 7조원 규모. 엘리엇은 현대차 지분 2.9%, 현대모비스 지분 2.6%, 기아차 지분 2.1%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투자한 금액은 모두 10억달러(약 1조1955억원)에 달했다. 물론 엘리엇은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패배해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고 지난해 12월 지분을 전량 매각했지만 이는 글로벌 헤지펀드가 한국 기업을 공격해 국부 유출로 이어질 뻔한 사건으로 꼽힌다.
문제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면 소송 문턱이 지나치게 낮아진다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를 예로 들면 지분 84.8%를 보유한 모회사 삼성전자 상장주식 가운데 0.01%는 67만9267주다. 이는 29일 보통주 종가 기준으로 400억7675만원에 그친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을 공격할 때 들인 투자금 중 3.3%만 쓰면 삼성디스플레이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중국 디스플레이 경쟁사가 삼성전자 주식에 400억원을 투자한 후 삼성디스플레이에 대해 과감한 설비 투자를 문제 삼을 수 있다.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 대규모 투자를 빌미로 모회사인 삼성전자에 손해를 끼친다며 소송을 제기하면 삼성디스플레이 설비투자를 속절없이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본안 소송으로 이어지면 중국 경쟁사가 승소할 가능성은 낮지만 소송전을 치르느라 급변하는 산업 변화에 대응하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면 상장사 주식을 적은 가액으로 매입한 뒤 소속 자회사에 악의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면서 "경영 활동을 제약하거나 소송 취하를 빌미로 회사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폐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사는 더욱 쉽게 다중대표소송에 노출될 수 있다. 정부가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사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는데, 이제 와서 다중대표소송제로 더욱 쉽게 소송에 노출되도록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상장협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자회사로 평균 4.9개사를 두고 있다. 대기업(4.5개사)은 물론 중견기업(3.0개사)과 중소기업(2.2개사)보다 많은 수치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통제로 빠르게 지주사로 전환했더니 다중대표소송제로 금융그룹 전체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소액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명분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견기업인 청호컴넷은 29일 종가 기준으로 368만원만 투자해도 다중대표소송이 가능하다.
코스닥 상장사 코이즈는 180만원만 투자하면 자회사 2곳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반면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단순 계
개인투자자는 소송 문턱을 넘을 수 없지만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는 손쉽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금액이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걷잡을 수 없이 소송 비용이 늘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워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