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해제 논의와 관련해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서울 내 그린벨트를 해제하자"고 압박하자 서울시가 강하게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정부 부처가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고로 '수장'이 사라진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15일 서울시청 8층에서 국토부·기획재정부·서울시·경기도·인천시 등 주택정책 책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주택 공급 확대 실무기획단 1차 회의'에서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은 서울시 공무원들을 향해 "그린벨트를 해제하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날 참석한 한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그린벨트 해제를 주장했고, 국토부는 이에 대해 의견을 말하지 않아 사실상 기재부 편을 들어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날인 1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택 공급 대책의 하나로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 상에서 기재부가 서울시를 압박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기재부의 부동산 안정화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더불어민주당에게 종부세 개편안을 제출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이거 밖에 증세를 안하냐'며 반려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기재부는 세금은 최소한으로 올리면서 주택 공급을 대량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국토교통부 역시 박선호 1차관이 15일 오전만 해도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불과 몇 시간만에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해 사실상 기획재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반면 주택 인허가 권한이 있는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지금 당장의 집 값을 잡자는 명분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했다간, 가뜩이나 별로 남지 않는 녹지를 훼손해 후손들에게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만큼은 남겨놓아야 한다는 유훈을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다른 주택 공급 방안도 많은데 그린벨트 논의부터 꺼내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비록 성추행 추문으로 인해 박 전 시장이 사망에 이르렀지만, 그린벨트와 관련해선 박 전 시장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이날 회의가 끝난 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미래 자산인 그린벨트를 흔들림 없이 지키겠다"며 "오늘 회의에서도 (개발제한구역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수장이 없어진 서울시가 앞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강하게 압박하는 당정과 기재부, 국토부 등 정부부처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느
이와 관련 시는 나름의 자신감을 비치고 있다. 서울 내 주택 공급을 더 늘릴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라는 것이 서울시 입장이다. 즉,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도 시장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 주택 시장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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