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는 '다주택자=투기꾼=규제 대상'이란 등식이 암암리에 많은 사람들에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택자들 뿐만 아니라 1주택을 겨우 장만한 서민·중산층 상당수가 상대적 박탈감을 다주택 투기에서 찾는 경향이 짙어진 때문이다. 거기에 임대주택 공급을 늘린다며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세금 혜택을 부여한 게 다주택 소유를 부추기고 집값에 기름을 붓는 듯 보이자 다주택자에 대한 반감이 한층 커진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3년 여 기간 동안 20차례가 넘는 많은 규제책이 쏟아졌지만 집값은 정책 당국을 조롱하듯 폭등을 거듭했다. 주택 당국은 특히 세금과 대출 규제를 강화해 수요 억제를 노렸지만 올라가는 가격을 붙잡지 못했고 그럴수록 더 많은 폭탄을 시장에 투하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 과정에서 집값 상승의 원흉이라는 주홍글씨는 다주택자에게 깊이 새겨졌다. 자연히 다주택자에 대한 인식은 투기꾼이고 규제를 해야 할 타깃이란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된 셈이다. 그런데 그 주홍글씨가 정말 맞게 새겨진 것인지, 다주택자를 때리면서 노리는 정책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 지를 차분히 들여다 봐야 또다른 헛발질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손실보다는 이익을 취하려 하는 게 보통의 인간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보자. 미래에 집값이 올라서 자신의 부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엄해진 세금을 물어가면서 2채 이상의 집을 갖고 다주택자가 되려 하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더라도 한꺼번에 여러 곳에 살 수 없는 노릇이니 자식에게 물려주려 한다든가, 집값 상승으로 인한 차익을 취하려 한다든가 하는 노림수가 없다면 다주택은 각종 세금 등 비용만 들고 효용은 떨어지는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집값 하락기에 주택 수요가 줄어드는 게 그런 이유다. 다주택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사는 집 외에는 전세든 월세든 세를 놔서 보유에 따른 비용이라도 뽑으려고 할 게 분명하다. 다주택자를 누르면 그 부담을 당사자가 오롯이 지지 않고 세입자나 새로 진입하는 주택수요자에게 전가시키려는 욕구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다주택은 증여 등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매입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주택 임대차시장의 공급 요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주택자는 주택을 사서 임차를 통해 현재 870만 명에 달하는 국내 무주택자들의 주거를 뒷받침해주는 해결사 역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을 완전히 국유화한 국가가 아니고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한 나라라면 어느 곳이든 무주택자의 주거를 받쳐주는 것은 다주택자이기 마련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무주택자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재정 소요가 엄청나게 커질테고 실제로도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일부 다주택자들이 정부의 세금 혜택을 등에 업고 과도한 주택 사재기기에 나선 것은 인센티브 체계를 잘못 구축한 탓이 크다. 하지만 임대사업자 중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이 세금 혜택을 기대하면서 사업에 뛰어든 선의의 피해자도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책을 펴고 있는 주택당국의 바람처럼 다주택자들이 1주택을 제외하고 나머지 물량을 모두 시장에 쏟아낸다면 얼마나 될까. 시장에서 추산하기로는 어림 잡아 440만 가구 정도가 될 것이라는데 만약 이 물량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사들인다면 주택 1채당 3억 원이라고만 가정하더라도 1300조 원을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특히 서울 주택의 중위 가격 수준이 9억 원을 넘나 드는 것을 감안하면 그 금액은 2~3배가 더 될 지도 모른다. 이 정도 물량이라면 공공 부문에서 사들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그런 큰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진다면 받아 줄 주체가 없어 국내 부동산시장은 붕괴에 직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
주택 당국이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이 주택시장을 전망하면서 실패를 거듭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전국의 부동산시장을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다. 전국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으니 이제 집을 더 짓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거나 2채 이상의 집을 가진 다주택자는 다른 사람이 살아야 할 집을 뺏은 것으로 바라보는 게 그런 시각의 한계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택시장은 칸막이가 촘촘하게 쳐진 시장이라고 보는 게 더 맞는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도 집의 위치에 따라서 모두 다른 집이고 일반적인 공산품처럼 가격이 균질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주택시장의 통계치를 볼 때도 그런 점을 유의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전국 주택보급률을 100%가 넘었지만 지역별로 세분하면 달라지기 때문에 구획을 지어 살피는 게 필요하고, 주택보급률 뿐아니라 자가주택 보유율, 자가주택 점유율 등을 같이 점검하는 게 실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국토교통부의 지난해 주거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가구의 비율인 자가주택보유율은 61.2%로 한 해 전에 비해 0.1%포인트 올라갔다. 직접 자기 집에 들어가 사는 비율인 자가주택점유율은 58%로 0.3%포인트 상승했다.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는 정책적 추세에 맞춰 자신의 집에 직접 들어가 사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해석을 할 여지가 큰 수치다.
전국의 다주택자 비율을 알 수 있는 최근 자료는 2018년 수치다. 2018년 당시 전국의 1주택자는 61%를 조금 넘고, 2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33%에 조금 못미치는 것으로 나온다. 서울이나 경기는 전국 수치에 비해 다주택자의 비율이 조금 더 낮아 서울 다주택자는 28%, 경기도 다주택자는 33%에 육박한다. 서울·경기의 다주택자 비율은 전국 평균 다주택자 비율에 비해 약간 낮은 수준이다. 다주택자가 주택 가격을 밀어 올린 것이라면 다주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제주도의 주택가격이 서울보다 더 폭등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역별 주택시장의 상황에 따라 가격 등락폭이 다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다주택이 집값을 밀어 올렸다는 주장은 일부 지역에선 맞을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 2018년 전국 다주택자들의 보유 주택수는 24만3000가구 늘었고, 1주택자들의 보유 주택수는 26만8000가구 증가했다고 한다. 집을 가진 사람이 추가로 집을 사들인 경우보다는 새로 집을 산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다주택자 비율을 보면 전국적으로 0.44%포인트 올라갔지만 서울에서는 0.17%포인트 줄었고, 경기도는 1.07%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서울의 다주택자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했던 경기도 일부 지역으로 다주택 수요가 옮아간 것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 집값 폭등의 원인을 다주택에서만 찾는 것이 과도할 수도 있다는 방증이다.
서울 다주택자들의 보유 주택수는 3000가구 늘었고, 1주택자의 보유 주택수는 2만4000가구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볼 때는 다주택자가 늘어난 주택 물량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갔지만 대부분 기존 주택을 사들였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주택자는 신규 분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1주택자가 신규분양으로 돌아선 사이 기존 주택시장에서 다주택자가 활발하게 매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에서는 다주택자들의 보유 주택수가 줄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주택가격이 상승한 것을 보더라도 집값 폭등을 다주택자들에게만 덮어 씌우는 것은 무리다. 물론 다주택자들로 인해 1주택자들이 자극 받아 시장수요를 폭증시켰을 수는 있지만 착시가 적잖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다주택을 투기로 단정 짓고 그들에게 보유세 폭탄을 던진다고 해서 매물이 바로 쏟아지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일단 급증하는 종부세 등 적용 시점이 매년 5월말로 정해져 있는 만큼 일정 기간 매각을 지연시키면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세부담을 견디기 힘든 경우 매물화가 이어지면서 집값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단기적으로 볼 때 임차인에게 오히려 세금을 전가시켜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거나 전.월세 물량 품귀로 이어질 개연성이 적잖다는 점을 주택당국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지금처럼 다주택과 1주택을 가리지 않고 현행 기준으로 9억 원 이상 고가주택 소유욕을 떨어뜨리려 전방위적인 증세에 나서는 것은 주택시장의 약자를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할 수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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