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계약자가 보험사의 보험금 과소지급 등 분쟁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규정한 '보험업 감독규정 9-16조'가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사와 '협의'를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규정이 만들어져 보험사가 거절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손해사정제도가 도입된지 40년이 지났지만 이른바 '자기손해사정' 금지의 개념조차 정리되지 못한채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적게 지급하는 수단으로 빈번하게 악용되고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보험사 소속 손해사정사는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어 손해사정에서 배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운영돼서다.
'보험업 감독규정 9-16조'에 따르면 보험계약자는 보험사와 '협의'해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다. 즉, 손해사정이 착수되기 전 보험사에 손해사정사 선임 의사를 통보해 '동의'를 얻은 때라는 전제다. '동의'가 조건이기 때문에 한쪽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런 까닭에 이 규정을 두고 있으나 마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손해사정사 대부분은 보험사 소속이거나 위탁계약 형태여서 손해사정의 독립성 확보가 어렵다. 교보생명에서 보험금 분쟁이 발생하면 이해관계에 있는 교보생명이 설립한 자회사 KCA에서 손해사정사를 배정하는 식이다.
보험금 지급 분쟁시 손해사정사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공정한 심사가 가능한데, 손해사정건 대부분을 보험사 소속 손해사정사가 맡다 보니 고용주인 보험사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것'이나 다름 없는 셈. 손해사정사는 보험사고 발생시 손해액과 보상금을 산정하는 전문가다.
이런 방식으로 손해사정제도가 운영되다보니 보험금을 깎은 보험사 소속 손해사정사는 성과금을 받고 보험계약자는 울분을 토한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손해사정사 상당수가 보험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고용 또는 위탁 손해사정사"라며 "보험계약자가 손해사정사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의 공정성 여부를 검증할 법적 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다. 보험사 대비 보험지식 등이 부족한 보험계약자는 약자일 수 밖에 없는데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는 것 외에는 없다. 민원을 넣어도 전문 조직을 갖춘 보험사에 약점을 잡히기 십상이다. 최근에는 보험사들이 특히, 소액 보험금 청구에 대해서도 꼬투리를 잡고 아니면 그만식으로 손해사정제도를 남발하고 있어 보험계약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발생한 생명보험 관련 민원은 297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3% 급증했으며, 이 기간 손해보험은 7862건의 민원을 초래해 12.1% 늘었다. 그렇지 않아도 민원이 많은 산업인데 보험사들이 손해사정제도까지 남발하고 있어 2분기(4~6월)에도 민원 증가가 우려된다.
이에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 금지 원칙'을 보험업법 제189조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험사의 손해사정 자회사 소유 규정을
[전종헌 기자 cap@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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