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임상균 증권부장
↑ 지난 4년간 한국공인회계사회를 이끌며 회계개혁을 진두지휘한 최중경 회장이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그간 소회와 향후 계획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승환 기자] |
―4년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서 회계개혁을 이끌었다.
▷회계개혁과 제도 변경 과정에서 고민도 많이 하고 초조한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회원들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었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전문가 단체인 한공회의 회장은 현업 회계사 중에 나오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공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저를 불러준 것은 그만큼 제도개혁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또 그러한 지지와 함께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회계개혁을 위한 추진력이 유지될 수 있었다.
―왜 이 시점에 회계개혁을 강조했나.
▷회계투명성은 국가경제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회계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거시경제 통계를 믿을 수 없게 된다. 기업의 최종 생산물 가치를 모두 더한 게 국내총생산(GDP) 아닌가. 투명한 회계정보가 밑바탕에 있어야 정확한 거시경제 통계를 산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해진다. 회계정보가 부정확하면 자원 배분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허위 수출로 매출액을 부풀려 수천억 원의 사기 대출을 받아낸 모뉴엘 사태도 결국 부정확한 회계정보가 그 원인이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재무제표가 투명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회계투명성은 결국 거시경제 성장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것이다.
―집중해서 추진한 개혁이나 변화는.
▷회계개혁의 두 축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다. 표준감사시간제는 전문성 확보를 위한 것이고 주기적 지정제는 독립성을 위한 것이다. 회계감사의 품질과 투명성이 담보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독립성이 동시에 필요하다.
―주기적 지정제로 감사인의 영향력이 과도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오히려 대부분의 주주 입장에서는 외부 감사가 제대로 시행되는 것이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일부 주주 중에서는 실적을 부풀리거나 '마사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CFO적인 관점이다. 철저한 외부 감사가 이루어져야 기업 내부에서 회계부정을 저지를 여지를 방지할 수 있고 이것이 결국 주주들의 투자금을 지키는 방법이다. 특히 한국의 독특한 기업지배구조 현실에서는 지정제가 불가피하다. 향후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면 그 필요성이 사라질 수 있겠지만 현시점에선 꼭 필요한 제도다. 소액 주주들이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렵고 오너가에 의해 주주총회나 이사총회 등이 지배되는 현 상황에선 독립적인 외부 감사의 중요성이 크다.
―표준시간제로 기업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감사시간 상한제를 도입한 것도 기업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다. 결국 기업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간을 완화했지만 아쉽다는 생각은 안 한다. 기업과 회계사는 상생해야 하는 관계다. 의사가 환자에게 봉사하듯이 회계사들 역시 기업에 봉사하는 존재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회계사는 기업의 건강을 지키고 병을 고치는 비즈니스 닥터다. 감사의 궁극적 목적은 회계투명성을 확보해 정확한 의사결정을 가능케 해 기업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퇴임하는 입장이다. 이젠 정부나 정치권에 편하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을 듯한데.
▷회계투명성만 확보돼도 잠재성장률이 2%포인트 정도 올라간다는 게 저의 신념이다. 한국의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경제성장률도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은 됐다고 보지만 아직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다. 그런데도 선진국보다 낮은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결국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회계정보가 부실하니 그 정보를 믿고 배분한 자원이 적시·적소에 활용되지 못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모뉴엘 투자자금을 될성부른 떡잎에 투자했으면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겠는가. 회계투명성이 경제를 성장시키고,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도 만드는 것이다. 회계투명성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정치권에서 계속해줘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해서 회계개혁을 멈추면 안 된다. 회계개혁은 규제가 아니라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늘리는 길이다
―임기 동안 아쉬운 점은.
▷영리 부문에 비해 비영리 부문의 회계개혁이 부족했다. 영리 부문보다 더 높은 수준의 투명성이 요구되는 분야가 비영리 부문이다. 지금까진 자산 100억원 이상의 공익법인만이 외부 감사 대상이었지만 그 범위가 더 넓어져야 한다. 영국의 경우 기부금 규모가 25만파운드(약 3억8000만원)를 넘으면 모두 공인회계사에 의해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한다. 또 공익법인은 그 특성상 회계투명성뿐 아니라 지출의 합목적성까지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현 상황에선 결식아동을 지원한다며 기부를 받아 직원들 월급으로 90%를 사용해도 장부만 제대로 처리했다면 투명성 측면에선 문제가 없는 것이다. 결국 공익법인의 감사 기준은 투명성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대상 확대와 함께 합목적성에 대한 규정도 제정돼야 한다.
―임기 만료 이후의 계획은.
▷당분간 회계업계에서는 떠나 있으면서 역사와 관련된 책을 집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역사 서적은 대부분 '히스토리 프로듀서'인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고 고증하는 내용이었다. 이번엔 '히스토리 컨슈머'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서적을 써보고 싶다.
■ 회장선거 과열…회계사 3만명시대 맞게 '간선제'로
"회장 선거가 지나치게 과열되고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다음 회장 선거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간선제로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할 때입니다."
수년간 회계개혁이 국내 시장에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국공인회계사회장 선거도 초미의 관심을 모으게 됐다. 업계·학계·정치인까지 5명이 출마했고,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최초로 온라인 전자투표가 결정되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선거 유세전이 펼쳐지고 있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은 선거로 불필요한 혼란이 발생하는 만큼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공인회계사는 공직자에 가까운데 코로나19 시국에 수천 명이 모일 수 없기에 최초로 전자투표를 결정했다"면서도 "2만2000명인 회계사가 곧 3만명에 이르고, 세계적으로도 회계사단체 직선제는 우리만 채택하고 있어 간선제가 더 전문 자격자 집단에 맞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철저히 이사회와 평의원회를 통해 구성되는 회계사회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최 회장은 "회계사회는 각 법인에서 추천받은 13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와 평의원 150명이 주요 결정마다 동의를 통해 운영되는 조직으로 선거에서 메이저리티(다수) 여부가 중요하다"며 "도토리 키 재기로 선출된 회장은 자칫 시작부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선거가 혼탁해질수록 이합집산, 분열 등으로 향후 회계사회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시했다. 최 회장은 이번 선거전에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누가 주도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수년간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으로 특정 인물의 것이 아니다"며 "실제 핵심인 '자율 6년+지정 3년'이라는 아이디어는 2003년 이종걸 전 의원이 당시 정세균·유시민 의원 등 45인의 동의를 받아 대표 발의했던 게 시작이며 이후 정부와 국회, 회계사회 등이 10년 이상 고심한 공동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차기 회장에 대한 덕목과 바람도 내놓았다. 최 회장은 "다양한 인적자산을 가지고 있고, 적(敵)이 없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며 "적이 많으면 일은 시작도 못하고 적들부터 상대해야 하는 만큼 회원 권익 신장에는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회장에 대해 정치적 편향성 우려가 생기면 어떤 사회공헌을 해도 의심받기 쉽기 때문에 회계사회 회장직 전후로 일종의 쿨링오프(Cooling-off·냉각 기간)를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최중경 회장은…
△1956년
[정리 = 진영태 기자 / 박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