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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에서 판매된 국외 투자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 원금 가지급 보상이 잇따르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만든 미국 펀드를 판매했다가 지급 유예로 914억원 넘는 투자 자금이 묶여 고객 원성이 커지자 이른 시일 내에 투자 원금 중 일부를 고객에게 미리 지급하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 운용사의 'US핀테크글로벌채권'은 지난해 5월부터, 'US핀테크부동산담보부채권'은 지난 2월부터 지급 유예 상태다. 은행 측은 나중에 다음 만기 때까지 최대한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손실이 확정되면 해당 투자 건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간다. 여기서 금감원이 불완전 판매 여부 등을 판단해 배상 비율을 제시하면 기업은행은 가지급한 돈을 정산해 나머지 돈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이 1100억원어치를 판매한 이탈리아 헬스케어 사모펀드도 손실이 예상되면서 지난달 보상 방침을 발표했다. 이 상품은 이탈리아 지방정부의 보건예산을 재원으로 하는 의료비 매출 채권에 투자하는 역외펀드를 총수익스왑(TRS) 방식으로 재투자하는 복잡한 구조의 상품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방정부 재정난이 심해지면서 매출 채권 회수 가능성이 낮다. 이에 투자 원금 50%를 가지급한 뒤 향후 만기 때 회수율에 따라 재정산하거나 현시점에서 정산한 돈을 받고 수익증권을 은행에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신한금융도 앞서 '부실 실사' 논란이 불거진 독일 헤리티지 펀드에 대해 투자 원금 50% 가지급을 결정했다. 만기 때 회수율이 50%를 넘으면 그만큼만 더 지급하고, 만에 하나 회수율이 50% 미만이라면 고객이 회사에 돈을 돌려줘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지급금은 손실 보전이 아닌 말 그대로 임시로 지급한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차액 정산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신영증권은 라임 펀드 판매액 약 890억원에 대해 투자자별로 원금 일부를 보상하기로 했다. KB증권은 지난해 사기 사건에 휘말려 손실 우려가 불거졌던 호주 부동산 펀드 판매액 중 85%를 회수했는데, 개인 고객에겐 나머지 원금까지 모두 돌려주기로 했다.
금융사들이 '손실 보전'이 아닌 '가지급'이란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본시장법 위반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자본시장법 55조는 투자자 손실에 대해 사전에 보장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사후에 보전해주는 것도 금지한다. 경영상 배임 문제도 뒤따른다. 회사가 투자자에게 꼭 지급해야 할 필요가 없는 돈을 주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이런 규정을 알고 있는 은행과 증권사가 선제적인 피해 보상에 나서는 건 그만큼 불완전 판매와 관리 소홀 등 판매자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고객 이탈을 막고 평판을 관리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DLF 사태를 겪으며 대형 금융지주사 지배구조가 뒤흔들렸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태가 커지기 전에 마무리 지으려는 의중도 있다.
금융당국도 내심 분쟁 조정보다는 금융사와 투자자 간 사적 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시장 원칙에 어긋난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