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감원 징계 '월권' 논란 ◆
당초 이번 행정소송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24조에 대한 해석 문제가 핵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해당 법조항은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내부 통제 부실을 이유로 은행 CEO를 제재하는 것이 법률 취지에 맞는지 판단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금감원은 내부 통제 부실이 아닌, '내부 통제 기준 마련 미비'가 이번 제재의 근거라고 설명해왔다.
이에 따라 우리금융은 금감원 측 처벌이 과했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제재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가 금감원 권한과 관련한 뜻하지 않은 해석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가처분신청이 인용될 것으로는 예상했지만 금감원의 제재 권한이라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거론됐다"고 말했다.
↑ 윤석헌 금감원장 |
금감원은 이와 함께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도 내세웠다. 해당 규정 제18조 제2항이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권한을 사전적·포괄적으로 금감원에 위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금감원은 "금감원이 저축은행 임원을 대상으로만 문책경고 징계를 내릴 수 있다"고 해석되는 지배구조법 40조와 지배구조법 시행령 제30조 제1항 11호는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 권한이 금융위원회에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 시각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금감원의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금감원이 근거 규정으로 드는 법조항들이 사전적·포괄적 위임 규정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행정처분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호저축은행 이외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권한까지 금감원에 직접 위임한 규정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 의문이어서 본안에서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행정법원 측 인식이 알려지면서 금감원 내부에서는 적잖은 동요가 일고 있다. DLF 판매 은행 CEO들에 대한 제재가 과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제재 권한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을 뒤늦게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법적인 근거 없이 제재를 내렸다는 것"이라며 "행정법원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했다"고 토로했다.
금감원 내부적으로는 초조감마저 감도는 상황이다. 재판부가 본안소송까지 같은 시각을 유지해 판결을 내린다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저축은행 외에 은행·보험·신용카드사 등 다른 업권 금융회사 임원에 대해 문책경고를 내린 것은 모두 제재의 근거가 없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만약 행정법원이 이번 가처분 인용에서 가졌던 인식을 최종 판결까지 반영한다면 과거 제재를 받은 사람들이 무효를 주장하며 들고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DLF 판매 은행 CEO에 대한 제재 과정에서 권한 문제를 제기했던 금융위도 머쓱하긴 마찬가지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DLF 판매 은행 CEO를 제재하면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적용한 것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큰 사안에 대해 금감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금융위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따라서 금융위는 임원 제재에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본시장법 438조에 따라 자본시장법과 관련한 임원 제재는 주의적 경고와 주의 단계의
재판부가 이처럼 금감원의 제재 권한 문제를 거론한 것은 법령·시행령·고시 등에 제재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정비하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승훈 기자 / 최승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