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더 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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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는 다음달 말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최근 주간사단을 확정 짓고 만기구조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은 다음달 초중순께 진행될 예정이다. 회사는 청약에서 흥행할 경우 발행 규모를 늘릴 가능성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실무 업무를 맡았다. 현대글로비스가 회사채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은 2001년 창사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계열사들을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기발행 회사채가 이관된 적은 있지만, 수요예측에 직접 도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장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고위급 재무라인들이 회사채 조달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수년 전부터 꾸준히 검토해 오던 걸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차입구조 다각화 차원에서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뱅크오브아메리카와 한국씨티은행, KEB하나은행 등에서 차입금을 꾸준히 빌려 왔다. 회사 입장에선 채권 발행을 통해 이자 비용도 상당 부분 아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22일 기준 현대글로비스와 동일한 신용등급(AA0)의 시장금리는 3년물 1.798%, 5년물 1.949%였다. 현대글로비스가 장기 차입 시 연 3% 안팎의 금리를 지불해온 점을 감안하면, 비용 부담을 크게 덜게 되는 것이다.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현대글로비스 측은 이번에 확보한 자금 일부를 물류 거점 투자, 선박 구입 등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22일 잠정 실적 발표에서 전년도 매출액(연결재무제표 기준)과 영업이익을 각각 18조2701억원, 8765억원으로 추산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8.3%, 영업이익은 23.4% 늘어났다. 같은 날 주당 3500원의 현금 배당도 결정하며 주주 친화적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발행 주식 수를 감안하면 배당 규모는 총 1313억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향후 비자동차 물류 사업을 확대하고 글로벌 화주 영업력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회사채 발행에 나선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회사채 발행은 특히 미국계 행동주의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그룹 지분을 모두 팔고 철수한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연관 지어 주목하는 이유다. 지난해 3분기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현대글로비스는 약 1조4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굳이 회사채를 찍지 않아도 될 만큼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다. 재계와 IB 업계에선 중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보로 해석한다. 현대글로비스가 실적 개선, 배당 확대 국면에서 신규 투자금까지 확보해 '몸값 높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으로 지분 23.3%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의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든 그룹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기업 가치를 높여놓는 것이 향후 새로운 개편안을 마련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풀이했다. 엘리엇의 철수 소식이 전해진 23일 증시에서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전일보다 6.85%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엘리엇 리스크'가 사라진 만큼 지배구조 재편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 전망한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철회했다. 하지만 격렬히 반대하던 엘리엇이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지분을 모두 처분한 상태여서 그룹사의 지향점을 투자자에게 설득하기 시의 적절한 시점이다. 다만 정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기존 개편안이 재추진될 가능성은 낮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외 IB들과 함께
한편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현대글로비스의 첫 번째 회사채 신용도를 'AA0(안정적)'로 평정했다. 그룹사 물량에 기반한 사업 안정성과 현금창출력을 고려해 신용도 체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수준을 부여했다.
[강우석 기자 / 박윤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