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투자한 국내 상장사 열 곳 가운데 네 곳에서 5대 주주 이상의 지위에 올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상장사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배력이 이처럼 강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자본시장법과 상법 시행령 개정까지 이뤄질 경우 경영 개입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주식 의결권을 보유한 716개 국내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은 19개사, 2대 주주는 150개사에 달했다고 5일 밝혔다.
3대 주주 59개사, 4대 주주 24개사, 5대 주주는 14개사로 716개 중 37.2%에 해당하는 266개사에서 국민연금이 5대 주주 이상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자본시장법은 경영권 개입이 가능한 주식 보유 비중을 5%로 보고 있는데,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716곳 중 38.1%(273곳)에 달한다. 이 중 보유지분이 10%를 넘는 기업은 80개사다. 국민연금 투자 대상 10곳 중 3~4곳은 경영권 개입을 시도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게 한경연의 분석이다. 한경연 관계자는 "공적연금이 19개 상장사의 최대주주로 있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적 연기금으로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국가는 14곳인데, 공적 연기금이 최대주주인 경우는 뉴질랜드 1건, 덴마크 6건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와 덴마크의 경우도 국민연금과는 사정이 다르다. 먼저 뉴질랜드의 사례는 뉴질랜드 노령연금기금이 뉴질랜드 은퇴촌 공급·운영 회사의 최대주주로서 19.9%의 지분을 보유한 경우로 공적연금이 회원들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연관사업에 투자한 것이다. 또 덴마크는 6곳의 사례가 모두 노동시장보충연금(ATP)이 최대주주로 있는 경우인데 ATP는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ATP그룹이 기금을 관리·운용하며, 보유주식 의결권도 독립적으로 행사한다.
한경연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시장과 개별기업에 대한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정부가 입법예고한 자본시장법 및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그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문턱을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5% 공시의무를 완화하는 게 골자이며,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사외이사 결격요건을 강화하고 이사·감사 후보자 개인정보공개를 확대하
한경연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자본시장법과 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막던 장벽을 제거하고 있다"며 "기업에 대한 지나친 경영 간섭은 관치 논란만 불러오고 국민의 노후를 불안하게 하는 만큼, 설립 목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혜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