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사 비용쇼크 ◆
대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 내부적으론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따른 각종 비용 부담에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
16일 매일경제신문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1분기 매출 기준 상위 30곳 가운데 24곳(80%)이 2017년 1분기보다 인건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1분기 인건비 합계는 12조5424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2년 전(2017년 1분기·10조2030억원)보다 22.9% 늘었다. 업계에선 매출이 급감해 구조조정이 필요한 일부 상장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건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상장사들이 주 52시간 근무제 등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부응하느라 각종 비용이 늘고 있다"며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위해 직원을 늘리거나 아웃소싱을 늘리면서 판관비가 증가해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최근 2년 새 인건비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SK하이닉스다. 올 1분기 보고서의 직원 현황 내 급여 총액(인건비)은 1조5397억원에 달해 2017년 1분기(5726억원)보다 168.9% 급증했다. 작년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리면서 생산·사무직에게 기준급의 1700%를 올 1분기 성과급으로 지급한 것이 반영됐다.
문제는 SK하이닉스 노조 측이 이 같은 성과급 수준에 불만을 나타내 향후 인건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경영 관련 특별 성과급은 노조와 협의 사항이 아닌데도 노조가 생산직 중심으로 이를 반대한 것"이라며 "올 1분기만 보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삼성전자의 5분의 1 수준인데 인건비는 삼성전자의 62%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대규모 성과급 지급에 반도체 투자 부담 등이 작용하며 1조3665억원에 그쳤다. 2년 전보다 44.6%나 감소했다.
GS건설 역시 올 1분기에 600억원 규모의 성과급이 지급되면서 인건비가 급증했다. GS그룹이 향후 2만1000명 규모의 신규 채용에 나서겠다고 작년에 공언한 만큼 인건비 부담은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의 고용 확대 정책에 화답한 통신사에도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추가 채용과 함께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LG유플러스 직원 수는 2017년 1분기 8698명이었지만 올 1분기에 1만848명으로 2년 새 24.7% 늘었다. 같은 기간 인건비는 31.5%나 증가해 정규직 전환이 비용 급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부 정책에 부응한 SK텔레콤 역시 같은 기간 인건비가 28.3% 늘어 분석 대상 30곳의 평균 상승률(22.9%)을 웃돌았다. 2년 새 직원 수는 17.1% 증가했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악재로 실적이 감소하고 있는 롯데쇼핑은 중국 사업을 구조조정하면서 직원 수가 최근 2년 새 5.2% 감소했다. 그러나 주 52시간 근무제 등으로 인해 국내에선 인력 효율화 작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같은 기간 인건비는 오히려 17.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대기업은 '통 큰 투자'의 후유증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등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 다각화를 위한 투자를 단행했는데, 때마침 터진 미·중 무역전쟁 영향으로 업황이 둔화하면서 실적 악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올 1분기에는 이와 같은 설비 투자에 따른 감가상각비 부담이 집중됐다는 분석이다. 감가상각비는 자산과 설비에 투입된 자본을 기간별로 나눠 비용으로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투자 증가와 함께 늘어나는데, 매출이 예상만큼 늘지 않으면 비용 부담이 가중된다. 감가상각비는 인건비와 함께 상장사 판매관리비(판관비) 항목에 포함된다.
분석 대상 30곳의 판관비는 올 1분기에 43조6272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4.7% 늘어난 수치다. 올 1분기 기준으로 판관비를 1조원 이상 쓴 곳은 삼성전자(13조4000억원) 등 9곳이나 됐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의 저가 액정표시장치(LCD) 물량 공세에 인건비를 최근 2년 새 21.6% 줄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판관비는 오히려 10.4% 늘어나 올 1분기 7647억원을 기록했다. 이 업체는 LCD 중심의 사업 구조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바꾸기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감가상각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2017년 1분기 1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던 LG디스플레이는 올 1분기에 983억원의 적자를 냈다.
깐깐해진 회계도 상장사의 일회성 비용을 늘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올 들어 상장사들이 예상되는 손실을 더 많이 잡으면서
LG화학의 경우 올 1분기에 275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는데 2년 전보다 이익이 65.4% 급감했다. 최근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로 인해 대규모 손실충당금을 올 1분기에 쌓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회계 기준을 감안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