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 넘는 내부 적립금을 가진 A사립대 투자재무팀의 장 모 차장은 최근 상사에게 이 같은 지시를 받았다. 장 차장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정기예금에만 돈을 넣어놓자니 저금리가 장기화한 탓에 기금이 쪼그라들게 생겼고, 그렇다고 금리 높은 상품에 투자했다가 혹시 리스크가 터지면 책임을 져야 하니 나서고 싶지 않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결국 "돈을 인출했다가도 다시 정기예금에 묻어두는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장 차장의 고민을 덜어줄 서비스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법인 기금의 보수적 성향에 맞춰 은행을 중심으로 '법인 자산관리(WM)'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현금 유동성이 있지만 금융 전문성은 부족했던 학교·재단 또는 중견 법인에서도 자금 운용에 대한 수요가 커져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올랐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이달 처음으로 신한금융투자, 신한BNPP자산운용 등 3개 계열사가 협업한 첫 법인 자산관리 컨설팅 체계를 출범시켰다. 최근 학교 법인과 중견 업체 등 신규 고객에 대한 컨설팅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액 자산가를 전담 관리하는 프라이빗뱅킹(PB) 제도에 법인 영업을 접목한 CPB(Corporate PB) 제도를 지난해 처음 도입한 이후 3개 계열사 협업을 통한 컨설팅으로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새로 구축한 체계에서는 단순 상품 추천에 그치지 않고 맞춤형으로 법인 자산을 직접 운용해준다는 점이 기존과 차별되는 점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전에는 전국 오프라인 센터에 배치된 CPB에 상담을 신청하면 상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정도에 그쳤다"며 "이제는 은행·증권사 전문 인력이 1년 이상 장기적으로 기금을 직접 운용해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으로서는 또 다른 재무팀을 회사 바깥에 두는 셈이다.
특히 은행과 금융투자의 안정적인 상품 공급은 물론이고, 그동안 고액 투자자나 대형 기관 위주로 이용하던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전담 자산 운용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OCIO란 연기금 등 운용자산 규모가 큰 곳에서 자산을 전부 또는 일부 위탁받아 운용하는 서비스다. 우리나라엔 2001년 처음 도입됐는데, 고용노동부 고용보험기금도 현재 OCIO인 한국투자증권이 맡아 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법인도 내부 운용 시스템 부족과 위험 관리 전문성 확보를 위해 OCIO 선정에 나서는 분위기라 운용권을 따내기 위한 업계 내 경쟁이 치열하다. 신한BNPP자산운용과 신한금융투자는 안정적인 은행 상품을 앞세워 이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잡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은행들은 이 같은 법인 자산관리 시장 진출이 향후 먹거리 선점은 물론이고, 그룹사 간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만드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에는 상품 안내에 '원금 보장'이 써 있지 않으면 아예 투자하지 않을 정도로 법인고객 투자 성향이 보수적이었다"며 "요즘 일각에서 은행이 매입 약정한 기업어음(CP)에 투자하는 등 다각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KB국민은행도 기업금융과 WM 간 협업, KB증권과 시너지 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국민은행은 최근 법인고객에 특화한 '자산관리 토털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을 기존 8명에서 50명으로 늘렸다. 이들은 '파트너십 PB(P-PB)'라는 이름을 가진 법인 전담 자산관리 상담역으로, 은행 PB 24명과 증권 PB 26명이 본부 직할 센터에서 근무하는 형태다. 은행과 증권뿐 아니라 카드·손해보험 등 계열사별 기업고객 담당 상담역이 한 팀을 구성해 공동 영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법인고객 수요에 부합하는 단기물, 예금 이상 수익률, 확정금리형 상품 등 라인업을 구축해뒀다"며 "이 밖에 법인에 필요한 절세·법률 컨설팅이나 부동산 투자 자문 같은 맞춤 상담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KEB하나은행 측도 "자
■ 용어 설명
▷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 연기금 등 운용 자산 규모가 큰 곳에서 자산을 전부 또는 일부 위탁받아 운용하는 서비스.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