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업의 과도한 이사 보수 지급에 대해 제동을 걸기로 했다. 기업의 경영 성과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이사 보수 한도를 올리는 안건을 주주총회에 올릴 경우 주주 권익을 명백히 침해한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연금은 해당 기업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지목해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이사 보수에 대한 견제가 상장사 옥죄기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한다.
16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최근 개정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지침'에는 사내이사와 감사의 보수 한도를 지나치게 높게 올리는 기업에 대한 견제 장치가 담겼다. 지침 내 의결권 행사 세부 기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보유 상장 주식과 관련해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주주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기금의 이익에 반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반대하기로 했다. 보수 한도 수준과 보수 금액이 회사 규모나 경영 성과 등과 비교해 과다한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해당 지침에 따라 국민연금은 이사 보수 한도를 과도하게 책정한 상장사를 견제하게 된다.
우선 해당 기업이 주주총회에 관련 안건을 올릴 경우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고, 개선이 없으면 해당 기업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지목해 비공개 대화에 나선다. 공개 서한 발송 등으로 기업의 입장 표명을 요청하거나, 현황 파악을 위한 자료·정보 요청, 개선 대책 요구 등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올리게 된다.
실제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238개사의 이사와 감사 보수 한도액 승인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SK이노베이션 등 시가총액 상위 상장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국민연금의 반대가 실제 의안 부결로 이어진 경우는 없었지만 중점관리기업 선정 등 연중 상시 관리 시스템이 가동될 것임을 감안하면 상장사 임원 보수를 둘러싼 압박 수위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선 국민연금의 이 같은 견제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임원 보수 인상에 대한 반대 기준으로 '회사 규모나 경영 성과 대비 과도한 경우'라고 제시했는데 너무 불명확하고 주관적인 잣대라는 것이다.
이날 국내 주요 상장사를 대표하는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임원 보수에는 회사 경영에 대한 책임과 리스크가 포함돼 있어 일반 직원과 대비해 높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며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국내 주요 기업 임원 보수는 현저하게 낮은 수준인데 도덕적·경영상 책임은 한층 강화하고 있으니 기업 옥죄기로 비치는 것"이라고 밝혔
작년 10대 그룹 상장사 사내이사의 평균 연봉은 11억4000만원으로 해당 그룹 일반 직원 평균 연봉(8400만원)보다 13.6배나 많았다. 그러나 블룸버그(2017년 기준)에 따르면 미국 최고경영자 연봉은 직원의 265배, 영국 201배, 중국은 127배에 달했다.
[문일호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