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심의 단계를 넘지 못해 제자리걸음 중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집단행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주민들은 9일 서울시청 앞에서 재건축 정상화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임대주택 비율 등 교육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몇 달째 고배를 마시고 있는 재건축조합이 중심이 돼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이날 오후 서울시청 서편에서 개최된 '서울시 행정갑질 적폐청산 및 인허가 촉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2만 조합원 총궐기대회'에는 조합원과 직계가족 등 2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1978년 입주해 30개동 3930가구로 이뤄진 잠실주공5단지는 강남권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로 손꼽힌다. 정복문 재건축조합장은 "서울시가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하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건축 심의까지 일괄해서 인가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고의로 심의를 미루며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총궐기대회를 통해 사업 정상화와 빠른 인허가를 촉구해 조합원의 추가 피해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조합 측은 이날 집회를 시작으로 오는 16일부터 청와대, 서울시청 앞에서 릴레이 소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장기전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재건축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5월께 조합원 등 3000명이 참여하는 2차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29일에는 강남구 은마아파트 주민 300여 명이 서울시청 앞에 모여 재건축 추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집값 상승이 우리 탓이냐' '불안해서 못 살겠다' 등 구호가 적힌 푯말을 들고 거리 행진을 하는 등 서울시 규제를 '행정갑질'로 규정했다. 은마아파트 역시 서울시 요청대로 건축 계획을 49층에서 35층으로 낮추는 등 재건축 추진에 애쓰고 있지만 재건축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단계에서 공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은 서울 아파트 가격을 급상승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는 만큼 서울시로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 재건축 시장에 숨 고르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재건축단지 주민들이 잇달아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현재 갈등 상황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박 시장은 지난 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도시재생 관련 행사에 참석해 "여러분은 제가 피를 흘리고 서 있는 게 보이지 않냐"며 "저를 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층고를 높여 달라, 용적률을 높여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원래 발표 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
박 시장은 "과거 뉴타운과 재개발로 인해 (건물이) 끊임없이 높아졌고 사람들은 옆집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며 "이것이 서울의 미래이고 우리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추동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