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어가는 도시 서울 ③ ◆
↑ 서울 강남구 도곡동 464 일대 개포한신아파트 전경. 현재 지상 9층, 620가구 규모 중소 아파트 단지로 준공 33년이 넘어 재건축을 추진 중인데, 서울시가 올 7월부터 환경영향평가 대상을 중소 단지까지로 확대하면서 사업 기간과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
"주차장이 부족해서 3중 주차를 하고 스프링클러를 달 수 없어 당장 내일 불이 나도 대책이 없는 형편입니다."(마포구 성산시영아파트 주민)
박원순 서울시장이 몇 년째 서울 시내 재건축 단지의 발목을 묶으면서 해당 단지 시민들 삶의 질과 안전은 외면당하고 있다. 박 시장 임기 중 주택 공급을 계속 기피해왔고 문재인정부 들어 중앙정부의 '집값 규제'에 보조를 맞춘 측면까지 더해져 대책 없이 늘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서울시의 잇단 규제로 당장은 집값을 잡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4~5년 후 공급 가뭄으로 집값 폭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잠시 집값 불씨를 덮기 위해 도심 재건축·재개발을 막으면서 집값은 집값대로 반작용을 키우고 주민들 생활 여건만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서울과 수도권 집값 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박 시장이 '규제 일변도' 주택정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서울시는 최근만 해도 '선한 의도로 포장된 악성 규제'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먼저 1월에는 공동주택을 포함한 연면적 10만㎡ 이상인 모든 건축물을 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보통 2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만 환경영향평가를 받았지만 올 7월부터는 700~800가구 안팎인 아파트 단지 건립 공사도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됐다. 이어 같은 달 을지면옥 등 일부 노포 보존을 이유로 세운3구역 재개발 사업을 전면 보류하면서 이 일대 주택 공급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지난달 12일에는 재건축 정비구역 수립 이전 단계에서 서울시와 단지 정비계획이나 디자인 등을 사전 협의하도록 한 '도시건축 혁신안'을 내놨다. 서울시는 인허가 절차를 줄인다고 설명하지만, 시장에서는 시의 관여로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어 이달 5일에는 전면 철거 방식인 현행 재개발 사업을 '보존 및 재생'을 병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2030 서울시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주택정비형 재개발사업)' 수립 계획을 발표했다. 재개발 구역 내 일부 주택이 보존되면 사업성이 떨어져 재개발 자체가 전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의 우려대로 정부와 서울시의 잇단 규제로 실제 서울의 주택 공급은 줄어들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박 시장 취임 이후인 2012~2018년 7년간 서울 시내 아파트 연평균 공급 물량은 3만2680가구로 취임 이전인 2005~2011년 평균 물량 3만8885가구보다 약 6000가구 줄어들었다. 박 시장 취임 이후 '뉴타운 출구전략'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재개발 지구가 해제되고 규제 강화로 재건축마저 막으면서 재임 기간에만 총 4만3000여 가구에 이르는 아파트 공급을 막았다는 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허가 면적은 318만㎡로 전년 대비 64%나 줄었고, 착공도 146만㎡로 35% 감소했다. 통상 인허가 후 3~4년 뒤 주택이 공급되는 기간을 감안하면 향후 공급 축소에 따른 서울 주택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토연구원은 수도권 신규 주택 공급 물량이 지난해 32만4000가구에서 2022년 21만5000가구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서울시가 집값 불씨를 우려해 수년째 재건축을 막아선 대표적 사례다. 준공한 지 41년이 지난 이 아파트는 재건축 승인을 다섯 차례나 미루면서 더 이상 수선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은마는 강남 재건축 시장을 대표하는 단지라 심의가 통과되면 부동산시장을 크게 자극할 우려가 있다"면서 "재건축 허가 여부는 국토부와도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강북 대표 재건축 단지인 마포구 성산시영아파트와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단지들은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에 발목이 묶여 있다. 이들 단지는 지난해 초 안전진단 첫 단계인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 추진이 예상됐지만 정부가 작년 3월 두 번째 단계인 정밀안전진단 기준을 크게 높이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1970년대 준공돼 대부분 준공한 지 40년이 지난 여의도 재건축 단지들도 서울시의 오락가락 행정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해 박 시장이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통합개발 계획)을 밝혔다 집값 상승을 자극했다는 비판이 일자 이를 번복한 뒤로 여의도 일대 재건축 단지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다리다 못한 시범·공작 등 여의도 재건축 단지 주민들이 서울시에 잇달아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했지만 줄줄이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정책실장은 "안전진단 강화 등 규제로 인해 재건축 사업이 지연 또는 무산되면서 2021년부터는 서울 시내에 공급되는 주택 물량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며 "공급 부족으로 인한 집값 급등 현상이 다시 나타날 것이고 그때 가서 시가 대응하려 하면 이미 늦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성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