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옥동 신임 신한은행장
파괴에서 변화 시작…디지털 혁신 불어넣는 '엉뚱한' 돈키호테 될 것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취임식 직후 경영 포부를 묻는 질문에 '고객 중심의 신한 문화'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난해 신한은행은 당기순이익 2조279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시중은행 중 1위를 차지했지만 실적에 안주할 순 없다는 얘기다. 그는 숫자로 드러나는 '은행의 이익'이 아닌 '고객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행장은 "과거 신한은행 직원들은 고객에게 먼저 인사하고 고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어떻게 해서든 고객 얘기를 들어주려고 하는 행동을 체화했다"며 "이 문화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이 같은 조직 문화의 재정립을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실제로 진 행장은 공식 취임 전부터 고객 현장을 꼼꼼하게 챙겼다. 일찍이 지난해 12월 행장 단독 후보로 추천돼 취임 때까지 약 3개월의 인수인계 기간을 보낸 그는 종종 혼자서 신한은행 영업점 현장을 둘러봤다. 수행비서 없이, 신한은행 임직원임을 상징하는 '원(One)신한' 배지도 없이 고객으로서 점포를 살핀 것이다. 아직 취임 전이라 그를 행장으로 알아보는 직원들은 거의 없었다.
그는 깜짝 '방문' 덕분에 어떤 점포가 어느 때 유독 붐비는지, 점포의 화장실까지 잘 관리되고 있는지까지 꼼꼼히 둘러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진 행장은 "가장 큰 고민은 영업점 통폐합의 딜레마"라며 "최근 금융 디지털화로 오프라인 점포를 찾는 고객 수가 줄면서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지만 정작 고령층의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은 고객이 붐벼 송금·출금 등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는 데도 불편을 겪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그런 점포에선 직원들도 수익성 낮은 고된 일을 하느라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며 "본점 차원에서도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직후에도 직접 고객을 만나러 가는 현장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서울·경기 지역 우수고객 300여 명을 초청해 소통의 시간을 가진 데 이어 매주 충청·호남·경남·경북 지역을 방문해 고객 의견을 듣는다.
진 행장이 유독 '신한 문화'를 강조하는 데엔 그의 33년 '신한맨'으로서의 경력이 응축돼 있다. 그는 덕수상고를 졸업한 직후 1980년 중소기업은행(현 IBK기업은행)에 입행했다가 1986년 신한은행으로 옮겼다. 그때 첫 임지가 신한은행의 인력개발실이었다. 신한은행이 창립된 지 5년째에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부터 '신한 문화 전도사'로 활약한 셈이다.
이후 그는 '상고 출신 신화' '파격 승진'의 주인공이었다. 2016년엔 상무급인 SBJ은행 법인장으로 근무하다가 부행장보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행장으로 선임돼 신한은행 안팎을 놀라게 했다. 행장 취임 때도 통상 전임 행장들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거쳤다는 공식을 깨고 수직 승진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신한은행장을 지내기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을,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은 신한카드 사장을 거친 바 있다.
그의 은행 경력은 일본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진 행장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신한은행 오사카지점에서 실무자로 근무했고, 신한은행의 일본법인 SBJ은행을 세우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2009년 설립된 SBJ은행은 당시 일본에서 겨우 두 번째 외국계 은행이었다. 이후 그는 오사카지점장, 본부장, SBJ은행 법인장 등을 거쳐 일본에서만 18년간 일하며 자타공인 '일본통'으로 자리매김했다. 신한은행은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동포의 100% 출자로 설립됐다는 역사성이 있는 데다 현재도 재일동포 주주 지분이 약 20%에 달해 이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진 행장은 일본 주주들과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오며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자회사 실적을 끌어올리며 경영 능력을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신한금융그룹에 따르면 그가 법인장으로 취임하기 직전인 2014년 SBJ은행의 영업이익은 243억원에 불과했지만, 취임 후인 2016년에는 714억원으로 약 3배 커졌다. 총자산도 같은 기간 4조8284억원에서 6조1000억원으로 26%나 뛰었다. 현재 SBJ은행은 신한금융그룹 글로벌 손익의 20% 비중을 차지하는 거점으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의 경험은 리스크 관리에 대한 그의 감각을 깨워줬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두 일본에서 겪었다. 진 행장은 "한국의 원화 변동 리스크,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안하면 기축통화 지역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똘똘한 채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에 유동성 있는 자산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생각 같아서는 인수·합병(M&A)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진 행장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 많은 신한은행 직원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 입을 모은다. 모든 일을 꼼꼼하게 챙기고 필요한 경우에는 호되게 지적한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진솔함과 진정성으로 대한다. 그는 취임 직후 공식적으로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도 "거창하게 슬로건을 걸고 시작하는 것은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조그마한 것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시작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진 행장은 디지털 혁신을 위해 "디지털·정보기술(IT) 개발 인력을 유목민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론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은행 인재를 과거의 상경계 위주 채용에서 벗어나 IT 인력을 중심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것과 채용한 IT 인력을 별도 부서에 두지 않고 영업 현장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런 의견을 "돈키호테 같은 엉뚱한 주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얼토당토않고 뚱딴지 같은 얘기를 계속해야 자극을 주고 변화·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 행장은 "IT 인재를 영업사원으로 쓴다는 정도의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디지털 기업이 되기 어렵다"는 말도 했다. 그는 또 "현업 부서와 개발 부서가 분리돼 있으면 니즈를 파악하기 어렵고 편리한 서비스가 나오기 힘들다"며 "개발자의 사무실을 없애고 그들을 현장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 진정한 애자일(Agile·민첩한) 경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신입사원 채용 때부터 이 같은 방향으로 변화를 주겠다는 생각이다.
은행 영업에선 개인금융의 자산관리(WM) 분야와 중소기업대출 리스크 관리, 기업금융의 혁신성장 지원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줄이는 등 힘들어하고 있다"며 "고용을 유지하는 자영업자에겐 여신 금리를 특별 인하하는 등의 생산적·포용적 금융을 실천해 가겠다"고 말했다.
▶▶ He is…
△1961년 전북 임실 출생 △1981년 덕수상고 졸업 △1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