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증여건수는 11만1863건으로 전년 8만9312건 대비 25.2% 증가했다. 이 중 서울의 주택 증여건수는 2만4765건으로 전체의 22.1%에 달했다.
정부는 2017년부터 연이은 부동산정책을 발표하면서 다주택자에게 양도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중과 조치를 취했다.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면 주던 혜택마저 대폭 축소시켰다.
이에 다주택자들은 많은 세금을 내며 팔기보다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증여하는 것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최고 62%에 달하는 양도세를 내느니 전세금을 끼고 자녀에게 부담부증여를 해 주택 숫자를 줄이면서 절세 효과도 노렸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압박'이 부의 대물림만 가속화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히 서울의 증여건수는 드라마틱하게 늘었다. 전국적으로는 증여건수가 25.2% 증가했지만, 서울에서는 66.7% 늘어났다. 집값 상승폭이 크고, 양도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큰 서울에서 증여가 특별히 더 많이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에서도 소위 '부자 자치구'에서 이 같은 현상은 더 도드라졌다. 강남구는 2017년 증여건수가 1077건에 불과해 2016년의 1164건 대비 오히려 줄었으나, 2018년에는 2782건으로 158.3% 증가했다. 서초구와 송파구도 2018년 대비 증여건수 증감률이 각각 99.8%, 104.2%로 2배 늘어났다. 고가 주택이 많은 곳일수록 증여가 작년 유독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사는 "서울과 지방 등 나누어서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거나 소규모의 상대적으로 저가 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집 파는 순서를 조절하는 등 다양한 절세 수단을 고민할 법하지만 서울의 고가 주택을 2채 이상 가진 경우, 증여는 사실상 유일한 절세 방안"이라면서 "지금은 침체기라고 해도 장기적으로 서울 집값이 우상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그냥 세금을 내면서 버티거나, 자녀에게 전세금을 끼고 증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의 3주택 이상 보유자는 한 채라도 매도하면 최고 62%, 2주택자는 최고 52%에 달하는 양도세를 내야 하는데 현재 아파트 시세가 많이 떨어진 데다 사려는 사람도 많지 않아 매매거래 성사가 쉽지 않다. 양도세 부담 역시 커 차라리 보유 주택 숫자를 한 채라도 줄이면서 절세할 수 있는 증여를 많이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 은행 프라이빗뱅커(PB)와 세무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예를 들어 매매가격이 10억원인데 전세보증금이 6억5000만원인 주택을 자녀에게 증여할 때 3억5000만원에 대해서 증여세만 내면 되는데, 이 경우 증여가액이 5억원이 안 돼 세율은 20%다.
다주택자는 양도세를 내는 것보다 증여하는 것이 절세가 될 수 있다. 특히 2주택자는 자녀에게 한 채를 증여하면 본인은 1주택자가 되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확 낮아진다. 다만 이후 자녀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돌려줘야 하는 전세보증금 6억5000만원은 자녀가 갚아야 할 채무가 된다는 점은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종합부동산세를 아끼기 위한 부부간 증여도 많이 채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A씨 명의로 공시가격 15억원짜리 주택을 보유하는 것보다는 부부간 비과세 한도인 6억원에 맞춰 부인 B씨에게 증여하면 부인은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않고, 남편 역시 1주택자라면 본인 지분이 9억원으로 줄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 배제된다. 종부세를 아예 안 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주택거래는 계속 떨어져 '거래절벽'이 일어난 상황에서 증여만 계속 늘어나 시장을 침체시키고 '가진 자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도 높다.
작년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 통계를 보면 9·13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직후인 10월 1만121건이던 아파트 거래신고건수는 11월 3552건으로 떨어졌고, 12월엔 2303건에 머물러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1월 상황은 더 좋지 않아 1~20일까지 신고된 거래건수는 1086건에 불과해 연 2000건 거래도 찍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 시기 증여는 크게 늘어나 정확하게 반비례했다. 작년 9월 주택 증여건수는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권 등 핵심지의 경우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오른다는 학습 효과까지 작용해 '보유하되 남에게 팔지 않는다'는 증여가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인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