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증시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배로 미국의 14배는 물론 글로벌 평균 13배와 비교해도 현저히 저평가됐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도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10년 전 미국발 금융위기보다 더 떨어진 상황에서 추가로 한국 증시 투자 비중 확대를 결정했다.
특히 이 펀드가 투자 일임을 맡긴 곳이 국내 중소형 가치주 투자에 정평이 난 VIP자산운용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자산운용사로 전환하기 전 투자자문사 시절인 2015년부터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투자 일임을 받아온 VIP자산운용은 메리츠화재, 휠라코리아 등 과거 저평가된 가치주들을 발굴해 높은 수익률을 낸 바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한국 경제나 증시 전체의 펀더멘털이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증시 급락 과정에서 성장성이나 본질 가치에 비해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떨어진 이른바 '저평가주'를 선별해 투자할 기회는 충분하다고 봤을 개연성은 높다.
실제 노르웨이 국부펀드뿐만 아니라 장기 투자를 하는 해외 자산운용사들도 한국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한 지난해 말 주요 기업들의 지분을 늘렸다. 캐피털그룹은 지난해 12월 SK하이닉스와 현대차 지분을 추가 매입해 지분율이 각각 6.8%, 7.78%로 늘어났다.
지난해 12월은 SK하이닉스 주가가 5만원 아래로 계속 떨어지던 시점이었지만 PER가 4배로 글로벌 반도체 업체 중 가장 저렴한 밸류에이션이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캐피털그룹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SK하이닉스의 지분을 5% 이상 가지고 있다고 공시한 후 추가 매입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LG유플러스의 보유 지분도 5%를 넘겼다고 공시했다.
피델리티도 작년 10월 금융시장 불안으로 금융주가 급락해 밸류에이션 매력이 부각되자 BNK금융지주의 보유지분을 5.94%에서 6.47%로 늘렸다. 6조달러 이상을 굴리는 운용자산 규모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3일 대림산업의 지분을 5%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증시에서 3조9991억원을 빼간 외국인들은 작년 11월부터 다시 한국 증시로 유턴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저렴한 밸류에이션 외 주주 친화정책도 개선되고 있어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를 보다 긍정적으로 볼 것이라는 기대도 싹트고 있다. 신중호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배당 성향이 개선되면 한국 증시의 재평가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외국인투자자들은 만년 저평가 상태였던 일본 증시가 5년 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배당수익률이 올라가자 주가가 오른 것처럼 한국 증시도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보고있다"고 전했다.
다만 최근의 외국인투자자 매수 우위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승민 삼성증권 이사는 "외국인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돌아오려면 기업 실적이 증가 추세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가 필요하다"며 "한국 기업 실적이 상반기 내내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외국인 매수세의 지속
주가가 기업 실적 부진을 이미 반영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상반기 수출 둔화가 본격화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2분기 실적도 낙관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국인 매수세가 언제든 꺾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