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서울시가 공공주택 2200가구를 공급하기로 한 강남구 동부도로사업소 전경. 왼쪽에 서울무역전시장(SETEC)이 보인다. [이충우 기자] |
수십 년간 하수 처리시설에서 나는 악취로 고생했던 강서구 마곡동 일대 주민들, 서북권 업무·상업 중심지로 수색역 일대 개발을 기대했던 은평구와 마포구 주민들 사이에서도 대규모 공공주택 건립 소식에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21일 서울시와 강남구청에 따르면 두 기관의 민원담당 부서에는 지난 19일 국토교통부의 '2차 수도권 공급계획 발표' 이후 강남구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이날 주요 인터넷 부동산 카페나 오픈 채팅방에는 서울시와 강남구청의 담당 부서 전화번호를 공유하며 '단체로 항의 전화를 하자'는 강남구민들 글이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서울시가 지역주민에게 사전 고지도 없었고 기존 용지 활용 계획을 전면 변경해 공공주택을 건립하겠다고 하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동부도로사업소 인근 A아파트 주민은 "강남 노른자위 땅에 임대아파트를 짓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직무 유기"라면서 "서울시가 2016년에는 SETEC 용지에 시민을 위한 모임공간인 '제2시민청'을 조성하겠다고 해서 크게 반대했는데 이번에는 임대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니 더욱 황당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014년부터 SETEC 복합개발을 주도했던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자유한국당)이 횡령 혐의로 올해 초 구속되고 지난 6월 지방선거에도 나서지 못하면서 서울시가 기존 재개발계획을 포기할 명분으로 주택 공급을 내세웠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당시 SETEC 용지에 청사 이전 계획까지 밝히며 SETEC 확대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던 강남구는 현재는 청사 이전과 복합개발에 관여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강남구청 홍보 담당자는 "서울시의 공공주택 개발 계획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부도로사업소와 서울의료원 용지 외에도 지난 19일 국토부와 서울시가 발표한 중소 규모 공공택지 가운데 애초 주택 공급이 아닌 다른 방식의 개발이 예정됐던 곳이 많아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서구 서남 물재생센터 유휴용지와 은평구 수색역세권 용지다.
서남 물재생센터는 악취가 심한 하수처리 시설로 인근 주민들 불편이 큰 곳이다. 서울시는 2009년 물재생센터를 지하화한 뒤 그 자리에 대규모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실제 공원을 조성 중인 가운데 일부를 택지로 활용해 2390가구 규모 공공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전체 용지를 공원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강서구 주민은 "하수처리시설 때문에 몇 십 년간 고통을 받아왔다"며 "겨우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시설이 지어지려고 하는데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다니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공공주택 2170가구가 들어설 예정인 은평구 수색역세권 역시 서울시의 주택 공급 계획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다. 수색역세권은 원래 수색역 인근 총 32만㎡ 규모 땅에 백화점, 호텔 등 상업시설을 비롯해 오피스와 문화시설 위주로 들어설 계획이었다. 기존 주상복합 용지(1만6352㎡)가 지정돼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 계획대로 공공택지까지 지정되면 상업시설이나 문화시설의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은평구 주민은 "수색역은 통일 시대에 거점 역할을 할 곳인데 주요 역세권에 아파트를 짓기에는 아깝다"며 "주택 공급이 부득이하다면 다른 시설이 축소되지 않는 범위에서 들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21일 '1차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대책'에서 중소 규모 택지로 발표된 송파구 옛 성동구치소 용지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측은 애초 계획에도 주택 공급 용지가 일부 포함돼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주민은 전체 용지에 주민편의시설이 들어서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곧 분양·임대 비율과 사업지역 등 상세 내용을 포함한 주택 공급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기존 개발 계획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 아니라 일부 용지만 활용하는 식이기 때문에 상세 내용이 발표되면 논란이 잦아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곧 도심 주택 공급 확대 방안과 관련해 세부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 주택정책 철학을 두루 밝힐 예정"이라고 말
[최재원 기자 / 정지성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