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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조한 경기와 증시 상황, 불안한 글로벌 투자 환경 때문에 투자자들이 고수익·고위험인 일임형 ISA 상품을 외면하고 은행 예·적금에 대부분 투자하는 안전한 신탁형 ISA에만 몰리고 있어서다. 주요 은행과 일부 증권사가 일임형 ISA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올해부터 원금 손실이 난 ISA 계좌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 파격적인 대책까지 도입했지만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ISA 계좌에 몰린 투자액은 5조2466억원으로 1년 전 4조947억원보다 28.1% 늘었다. 이 중 신탁형 ISA 계좌에 투입된 돈은 4조6073억원으로 전체의 87.8%에 달해 작년 8월 86.7%보다 비중이 더 커졌다. 2016년 탄생한 ISA는 예금·펀드·파생상품 등 여러 금융상품을 하나의 계좌에 담아 분산투자하면서 가입기간 중 생긴 순이익 200만원까지는 비과세(이자소득세 15.4%)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200만원이 넘는 초과 수익에 대해서는 9.9% 세율만 매긴다.
크게 신탁형과 일임형 상품으로 나뉘는데 이 중 신탁형 ISA는 투자 종목을 일일이 투자자가 지정해 이것을 판매하는 은행 혹은 증권사는 단순히 판매창구 역할만 한다. 반대로 일임형은 포트폴리오 구성부터 리밸런싱(자산 배분), 투자 결정까지 모두 은행 등 금융사가 스스로 할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신탁형과 일임형 투자 종목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신탁형은 원금 보장이 가능한 저위험·저수익, 일임형은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하지만 원금 손실 우려도 있는 고위험·고수익 상품으로 인식된다. 8월 말 기준 신탁형 투자금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예·적금으로 전체의 94.5%를 차지했다.
올해 들어 더욱 심해진 신탁형 ISA에 대한 쏠림 현상은 금융사들이 일임형 ISA 가입을 늘리기 위해 도입한 '수수료 0원' 전략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말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KB국민·우리·NH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과 일부 증권사는 일임형 ISA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금융사가 받는 일임보수(수수료)를 면제하는 내용으로 상품 약관을 고쳤다.
원금 손실을 걱정해 일임형 가입을 기피하는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자산평가금액(투자원금+수익) 대비 최대 1%에 달하는 수수료를 면제해 투자 시 비용을 최소화한 것이다. 특히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단순히 마이너스가 났을 때뿐 아니라 수익이 나지 않아 '본전치기'에 그친 일임형 ISA 계좌에도 수수료를 매기지 않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고수익을 노리는 일임형 ISA 가입자 비중은 오히려 더 줄어든 셈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불안한 투자 환경이 손실 가능성 있는 투자상품을 기피하는 현상을 더욱 강화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입액이 집계된 지난 8월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 우려에 글로벌 투자 분위기도 악화되고 코스피도 한 차례 조정된 후 박스권 하단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안전자산 추구 현상이 그 어느 때보다 짙어진 만큼 원금 사수가 가능한 신탁형 ISA에 돈이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수억 원대 투자금을 굴리는 자산가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8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자산가들이 가장 많이
저조한 수익률도 일임형 ISA를 기피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금투협에 공시된 일임형 상품 최근 1년 수익률을 보면 1~2%대가 대부분으로 사실상 예·적금 금리와 비슷하다. 일부 증권사 고위험 상품은 -4.45%를 기록했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